"요즘 정말 죽을 맛입니다. 저금리 속에서 운용 수익을 끌어올리려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는데 재무건전성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말 그대로 언감생심입니다.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이 양날의 칼과 같아 답답할 때가 많아요."
중형 보험사의 한 투자담당임원이 토로한 심정은 현재 보험사가 처한 딜레마를 상징한다.
시중에 넘쳐나는 돈과 협소한 투자대상 간의 미스 매치(불협화음)가 커지는 상황에서 재무건전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보험사 입장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이미 자산운용부서 실무자들은 이런 딜레마를 체감하고 있다.
사실 재무건전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는 금융회사들에 숙명과도 같다.
하지만 저금리가 추세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마당에 금융 당국까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 고삐를 바짝 죄면서 양자 간 함수는 더 풀기 어려워졌다.
단적인 예로 보험금 지급 여력을 높이기 위해 위험기준자기자본(RBC)비율을 이달 말부터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강화하도록 한 조치는 자산운용에 큰 짐으로 다가 오고 있다.
보험사로서는 갈수록 높이를 키우고 있는 재무 건전성 문턱을 넘으면서 고객과 약속한 수익률을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최선의 투자처인 국고채 장기물의 수익률이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 3%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보험사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험사의 자산운용 수익률은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
손해보험사의 자산운용 수익률은 지난해 6월 5.04%에서 올 6월에는 4.35%까지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생명보험사는 5.76%에서 5.08%를 기록했다. 현재 보험사가 판매하고 있는 상당수 저축성보험의 월 공시이율이 4% 중반대이고 과거 팔린 10%대 수준의 고정금리 상품의 계약이 유지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역마진 우려는 괜한 트집잡기가 아닌 상황이다.
대형 생보사 투자 담당 임원은 "RBC규제가 강화될수록 국고채 운용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어 운신의 폭이 좁다"며 "과도한 규제가 자산 운용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정책 집행에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위기 의식을 느낀 보험사들은 제한된 투자 포트폴리오 내에서도 자금 이동을 꾀하고 있다.
생보사의 국고채 투자비중이 지난해 9월 19.49%에서 올 6월 18.26%로 줄고 회사채 비중은 4.21%로, 1%포인트가량 증가한 점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해외 투자 등에 대한 관심도 예전에 비해 부쩍 늘었다.
최근 삼성생명이 세계은행 산하 투자 금융기관인 IFC와 손잡고 아시아 신흥시장의 투자처 발굴에 나선 것을 비롯해 딜 소싱을 갖춘 외국계 파트너와 물밑 접촉에 나서는 대형 보험사도 적지 않다. 진익 보험연구원 실장은 "보험사로서는 그간 외면해왔던 원자재ㆍ곡물 등의 상품 투자 등도 검토하고 정부도 인프라 투자를 활성화시켜 보험사의 자금운영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들도 고객 유치에 혈안이 돼 저금리에 따른 리스크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최저보증이율 등 이율을 비롯한 상품 설계 전반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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