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들어가는 가구를 건설회사에 납품하는 한 중소 가구업체의 B부장은 C건설회사의 입찰에서 성공적으로 공사를 따낸 후, 오히려 한숨이 늘어졌다. 최저낙찰가로 경쟁이 붙은 10억원 짜리 공사를 8억원이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낙찰을 받았지만, C건설회사가 한번 더 가격을 협상하자고 요구하고 나온 것. 값을 더 깎지 않으면 계약을 못할 분위기다. 최근 아파트 건설현장에 납품을 마친 이 회사 D부장은 E건설회사로부터 결제내역서를 들여다보곤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내역서에는 건설현장 청소비 명목으로 1,000만원이 빠진 금액이 찍혀있었다. 지금까지 아파트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미장, 가구, 벽지업체 등엔 청소비 명목으로 100만~200만원 씩 공제되던 것이 관례. 하지만 이번엔 액수가 너무 컸다. 산업경기 침체로 대기업들이 내핍경영에 돌입하면서 중소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유가와 원자재가 상승으로 원가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저가계약을 강요하거나 각종 비용부담까지 떠넘기면서 중소기업을 한계상황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며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일부 건설업체는 납품계약서 내용 자체를 무시하거나, 대금처리를 수개월 지연하는 등 하청업체 쥐어짜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실제로 국내 대형 건설회사 F사에 가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 G사의 H상무는 F사에서 지정한 자재공급회사로부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재를 사다 쓰고 있다. H상무는 “같은 품질의 국내자재가 있어도, 자기들이 지정한 외국업체 것만 쓰라고 하니 원가가 더욱 높아진다”며 “그렇다고 건설회사가 중간에서 저렴하게 중재해주는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PB값 상승으로 자재 값 부담이 큰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가구 뿐 아니라 음식물처리기 등 빌트인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들도 건설업체의 일방적인 대금지급 연기에 속을 태우고 있다. 생활가전업체 I사 관계자는 “납품물건에 하자가 없으면 대금을 제때 지급해야 하는데, 최근엔 별 것 아니라도 툭하면 클레임을 걸어 2~3개월 결제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대기업의 일방적인 강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상생협력은 남의 동네 얘기”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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