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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콘트롤센터(GCC)에 10개의 빨간불이 켜져 있다. 전세계 해양을 누비고 있는 선박 2,234척 중 10척이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어렵다는 신호다. 그 가운데 하나는 S전자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전자제품을 미국으로 운송하던 중 경유지인 부산항 도착시간이 예정보다 지연돼 스케줄에 차질이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GCC 담당자는 인도네시아 지사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2시간 이내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싱가포르 토구안(Toh guan) 거리에 자리한 CJ GLS ASIA 본사 정경이다. 지난 3월 싱가포르의 어코드(Accord)를 전격 인수, 아시아 5위의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발돋움한 CJ GLS는 물류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같은 날 오후 IT 물류시스템으로 널리 알려진 YCH의 물류창고에서는 전자태크를 부착한 전자제품 박스와 팔레트(화물적재용 기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는 창고 안 각 구간에 설치된 전자인식시스템에 포착된 정보로 화물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YCH의 주요 고객인 모토로라는 이 같은 IT 물류시스템을 활용해 미화로 8,000만달러에 달했던 물류비용을 1,000만달러 수준으로 끌어내렸다고 한다. RFID(비접촉식 정보식별) 기술이 접목된 물류시스템의 힘이다. 로버트 얍 YCH 대표는 “95년부터 공급망관리(SCM) 솔루션을 개발, 제공하고 있다”며 “화물의 물리적 흐름에 IT 시스템과 관세ㆍ세금 등 재정적 흐름을 통합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YCH는 지난해 150만병의 주류를 운송하면서 100%의 정확성을 기록, IT 시스템의 가치를 입증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유럽, 미주를 잇는 지리적인 이점에다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신속하고도 정확한 서비스로 세계 물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싱가포르에 본사나 지역본부를 두고 국제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기업은 250여개사에 이른다. 김정수 무역협회 싱가포르지부장은 “싱가포르는 항만에서만 하루 6만TEU의 화물을 처리, 세계 환적화물의 4분의1을 차지함으로써 지난해 총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1위 항구로 부상했다”며 “이 같은 성과는 편리한 항만ㆍ공항, 세금혜택 등 인센티브, 금융인프라 등에 IT 인프라와 IT 물류서비스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IT를 기반으로 한 싱가포르 물류기업도 최근 업계에 불고 있는 대형화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싱가포르 국영선사로 출발한 NOL그룹은 97년 자사의 두배 규모인 미국 APL사를 인수했으며 올 3월에는 CJ GLS가 어코드를 합병하기도 했다. 물류기업의 네트워크를 넓히고 글로벌화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제휴나 합병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활발하다. 해양ㆍ항공운송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퀴네앤나겔은 계약물류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ACR로지스틱스를 인수했으며 독일 DHL은 영국 엑셀(Exel)을 사들이는 등 글로벌 물류기업의 합종연횡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임오규 CJ GLS 공동대표는 이와 관련해 “한국 물류업계도 이 같은 대세를 인식하고 앞으로 5~10년 안에 글로벌 브랜드를 가진 대형 물류전문회사를 세계시장에 적어도 3~5개사 내놓아야 한다”며 “미래 성장가능성이 높은 물류산업은 한국인의 섬세한 관리력과 부지런함이 절묘하게 들어맞는다”고 강조했다. <사진설명> 세계 1위의 컨테이너항만을 보유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편리한 항만ㆍ공항시설과 세제혜택 등 정책적 지원, 금융인프라 등을 기반으로 250여개에 이르는 글로벌 물류기업의 본사 및 지역본부를 유치하고 있다. 또 이들 기업은 정보기술(IT)과 전문화, 대형화를 내세워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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