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분류를 둘러싼 양측의 계속된 싸움에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기업들만 멍이 들고 있다. 자율협약 체결기업의 경우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엉뚱한 여신분류 다툼에 경영정상화 방안조차 확정 짓지 못한 채 신규 자금 투입이 지연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8일 금융감독 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자율협약 기업의 채무재조정 여신도 '고정이하'로 분류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여신은 ▦정상 ▦요주의 ▦고정이하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뉘는데 '고정이하'부터 부실채권(NPL)으로 분류된다.
금융권은 그동안 자율협약 여신을 '요주의'로 분류해왔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이 각각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통합도산법 등 법률에 근거한 반면 자율협약은 채권단 공동 협약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채무재조정이 이뤄지면 해당 기업의 여신을 고정이하로 보는 것이 원칙에 맞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기업의 대출채권은 무수익 여신으로 고정이하가 맞다"며 "당국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영역이 아니어서 원칙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펄쩍 뛰고 있다. 자율협약의 기본취지는 구조조정 기업의 여신을 정상 범주로 분류한 뒤 정상화하는 것인데 당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율협약의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는 입장이다. 고정이하로 분류한다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하지 왜 자율협약을 맺겠느냐는 것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신규 여신까지 요주의가 아니라 부실(고정이하)로 분류하라면 어느 은행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하겠느냐"고 말했다.
갈등이 커지면서 자율협약 기업들의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이달 중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만들어놓고도 신규 자금 3조원과 6,993억원 규모의 출자전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발만 구르고 있다. 채권단이 감독당국의 부실채권 분류 지시에 반발해 자율협약 동의서 제출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STX중공업∙STX엔진∙㈜STX의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 작업도 당국과 채권단 간 갈등으로 당초 이달 말에서 다음달로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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