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경기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소비자들의 마음도 얼어붙고 있다. 소비자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심리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 한국은행 조사결과 향후 6개월 동안의 소비지출계획을 나타내는 소비지출전망CSI(103)는 반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기준치 100을 웃돌기는 했지만 지출을 늘리겠다는 비중은 전 분기보다 줄었다. 때문에 하반기 내수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다. ◇영화도 안 보고 옷도 안 사겠다=한은이 서울ㆍ부산 등 전국 30개 도시 2,5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2ㆍ4분기 소비자동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 하반기 소비자들은 영화나 연극관람 등 문화생활비를 줄이고 새 옷도 사 입을 뜻이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 여기에다 아이들 교육비를 아끼고 몸이 아파도 참겠다는 응답이 올해 1ㆍ4분기보다 더 늘었다. 교양ㆍ오락ㆍ문화비(96→92), 여행비(93→90), 의류비(100→97), 외식비(89→89) 지출계획 모두 기준치 100을 밑돌았다. 교육비(116→108)와 의료보건비(116→115)는 기준치를 웃돌았으나 전 분기보다 늘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줄었다. 그만큼 앞으로의 생활형편을 비관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셈이다. 소득수준별로는 300만원 이상(114→111), 200만원대(109→108), 100만원대(104→101) 등 모든 계층의 지출전망이 하락했다. 특히 100만원 미만 계층은 96에서 92로 기준치를 더 밑돌아 저소득층일수록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도가 심할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 심리 안 살아나면 기업이익 감소 불가피=민간소비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수출과 더불어 경기회복의 주요 관건 중 하나다. 소비심리는 실질구매로 이어지는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자체 조사결과 미래소비 관련 심리지표는 일반적으로 실제 소비에 1~2분기 가량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경기 하강기에는 소비자들의 심리악화가 소비감소로 직결된다는 데 있다. 통계청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소비자들이 경기 하강기에는 심리가 악화됨과 동시에 소비를 바로 급격히 줄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반면 경기가 좋을 때는 소비를 바로 늘리기보다 조금씩 늘리고 있어 기대지수가 3개월 가량 선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환율과 고유가 등으로 수출증가율 둔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경기비관론이 확산돼 실질구매력 저하로 이어진다면 기업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소비심리 단기간 재도약하기 힘들 듯=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모멘텀이 없는 한 소비경기가 단기간 내에 회복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김한진 피데스증권 전무는 “연초 개선의 기대를 모았던 소비심리가 최근 실물경기에 대한 불안과 실망으로 관망세가 확산되고 있다”며 “소비경기는 수출경기가 재도약하는 시점까지 바닥을 다진 후 올라가는 U자형 또는 접시형의 궤적을 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도 기대지수가 기준치 밑으로 내려간 경우에는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며 소비자 심리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해 정부와 한은은 소비심리 위축은 일시적 현상으로 아직 예단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1ㆍ4분기 경제성장률 등 각종 지표가 좋지 않게 나온 것이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소비심리가 추가로 악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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