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최소 몇 번 찍어야 눈 감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딱따구리는 왜 두통에 시달리지 않을까?"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주제의 연구가 노벨상을 탔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기발한 상상력과 이색적인 발명으로 세상을 즐겁게 한 괴짜들에게 주는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의 엄연한 연구논문 주제다. 이그노벨(Ig Nobel)상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유머 과학잡지인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의 발행인 마크 에이브러햄이 1991년 제정한 상으로,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업적'을 남긴 과학자에게 주는 패러디 노벨상이다. 수상 분야는 매년 바뀌는데 물리학, 화학, 의학, 생물학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되고 문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같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도 상을 준다. 10개 분야에서 10건의 연구가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한 경우 한 분야에서 복수 시상도 한다. 상금도 없고 수상자들은 자기 돈으로 비행기삯을 내고 시상식에 가야 한다. 매년 10월 초 발표되는 노벨상에 앞서 하버드 대학 샌더스 강당에서 수여된다. 올해 이그노벨상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기지가 번뜩이는 10명의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상을 수상한 호주의 피어스 반스와 닉 스벤슨은 단체 사진을 찍을 경우 눈 감은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려면 최소한 몇 장을 찍어야 하는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는 실험을 했다. 눈 깜빡임은 빛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촬영 순간에 눈을 감는 사람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20명 이하가 카메라 앞에 서 있고 조명 상태가 좋다면 사람 수를 3으로 나눈 수만큼 촬영하면 된다고 한다. 영국의 하워드 스테이플턴은 고주파 10대 퇴치기 '모스키토'를 발명해 평화상을 수상했다. 10대들에게만 들리는 고주파 소리를 흘림으로써 조용한 식료품 가게와 쇼핑몰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욕설을 퍼부으며 어슬렁거리는 불량 청소년들을 모기 쫓아내듯 몰아내 쇼핑몰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게 그에게 주어진 수상 이유이다. 이 상품은 현재 전국의 매장과 지방 정부, 경찰, 일반 주택 등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부리로 나무를 수도 없이 쪼는 딱따구리는 사람으로 치면 시속 25km로 초당 20회 정도 얼굴을 벽에 박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미국의 이반 슈왑 박사는 쉴 새 없이 나무를 쪼아대면서도 두통을 겪지 않는 이유를 규명해 조류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슈왑 박사는 "스펀지 형태의 두꺼운 두개골이 딱따구리의 뇌를 보호해 주는 데다 나무를 쪼기 1000분의 1초 전에 눈을 감아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쇠똥구리가 '똥'을 선택할 때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는 내용의 연구, 말라리아를 옮기는 학질모기가 사람의 발 냄새와 림버거 치즈 냄새에 똑같은 정도로 끌린다는 사실규명 등 유머스러우면서도 채치있는 발상의 논문도 수상 대열에 끼었다. 역대 수상자 중에는 한국인 수상자도 있다.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 1999년 환경 보호상을 받은 권혁호씨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는 아쉽게도 한 명도 선정되지 않았다. 이그노벨상 담당자 마크 에이브러햄에 따르면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저자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학술지 논문이 연간 1만 편"이라고 한다. 언뜻 사소하거나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거기에 '쓸모의 가치'가 숨어 있다.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엽기적 쓸모에 나도 한번쯤 도전해 보는 것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