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전주성 당시 IMF방문교수 "남미식 긴축처방 반대…IMF도 결국 수용" 재정 건전하고 인플레 심하지않아 적자재정 주장경제 리스크구성 변해…지금은 가계·정부가 문제재정 흔들리면 남미식 또 다른 위기 찾아올수도 정리=이종배기자 ljb@sed.co.kr 이재철기자 humming@sed.co.kr 관련기사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이규성 "위기는 올 수 있다. 문제는…"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정덕구 "대선 휘말려 경제위기 올까 걱정"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책임있다"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빨랐으면 해체 안돼" 임창열 "환란 막을수 있었다" 비공개 사실 임창열 "'경제 괜찮다' 강변은 실수 되풀이" 전주성 "재정 흔들리면 위기 또 찾아올수도" “위기의 원인이 전혀 다른 데도 IMF는 남미식 처방을 내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재정긴축은 말도 안되며, 오히려 재정규모의 10%까지 적자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적용한 고금리 긴축처방을 저지하기 위해 IMF의 ‘심장부’에서 고군분투한 경제학자가 있었다. 재정 분야의 권위자인 전주성(50ㆍ사진) 이화여대 교수 겸 한국재정학회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교수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방문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고국의 위기를 접한 그는 정부의 방만경영에서 비롯된 남미식 경제위기와 달리 우리의 위기는 생산ㆍ공급 부문의 비효율에 촉발된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는 비토 탄지 IMF 재정국장 등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IMF 긴축처방이 한국경제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눈에 비친 한국경제의 모습은 여전히 위기의 ‘계속’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금융부문의 리스크가 컸지만 지금은 가계ㆍ정부 부문이 문제이다”라며 “환란 이후 국가경제의 리스크 구성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가 환란을 맞게 된 근본 원인을 뭐라고 보는지. ▦우리경제의 위기원인은 생산, 공급 부문에 있었고, 남미형은 총수요 부문에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정부의 실패이긴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남미형은 정부가 재정적자를 방만하게 유지하다가 그 돈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통화 증발,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이 유발되고 위기로 귀결됐다. 따라서 여기에 대응한 IMF의 처방은 긴축재정 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총수요에 문제가 없었다. 재정은 비교적 건전했고, 인플레이션도 심하지 않았다. 우리의 문제는 생산ㆍ공급 측면의 비효율이었다. 생산시장의 경우 당시 정부 주도형으로 대기업들이 차입재원을 이용해 투자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투자하기 위해서는 재원과 리스크 대응 두 가지가 중요한데 이것을 모두 정부가 통제하는 은행을 통해 해결해줬다. 정부 보증을 통한 재원 조달은 우리가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한데… ▦바로 이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어느 정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금융활동을 통제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보증을 믿는 기업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마구 차입경영을 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과잉ㆍ중복투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이 회사 하나로 보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는 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일 수도 있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자본이 자동차산업에 과잉투자 된 것이다. 바로 이 연결고리가 지나친 정부의 보증이었다. 성장의 메커니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기의 원인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원과 리스크를 동시에 흡수할 수 있었지만, 국가 경제로 보면 과다한 투자가 된 것이다. 환란 후 IMF가 내린 경제 처방에 대해 적극 반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기의 원인이 전혀 다른 상태임에도 긴축재정을 하려고 하니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97년 당시에는 국내에 있지 않고 IMF 방문교수로 있었다. 비토 탄지(Vito Tanzi) IMF 재정국장이나 다른 간부들하고 상당히 친했다. 당시 ‘미션팀(mission team)’을 비공식적으로 굉장히 많이 만났고 설득도 많이 했다. 남미식 처방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많이 표시했다. 생산부문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국제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봤다. 재정긴축은 절대적으로 반대하면서 오히려 필요하면 재정적자를 과감히 해 10%까지 적자재정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IMF가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하고 재정정책을 긴축에서 확대로 전환했다. 그러나 금융정책은 그대로 긴축으로 유지해 이 부분이 여전히 논란으로 남게 됐다. 당시 구조조정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시중은행은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제2금융권은 아직도 문제다. 공적자금을 사용, 실제 구조조정을 한 것도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 제일은행의 경우 당연히 폐쇄하고 5조원이 들든 10조원이 들든 예금대지급을 해줘야 엄청난 이득이 있었다. 옵션 A와 B가 있다. A는 제일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매각하고, B는 제일은행을 폐쇄하고 예금대지급을 하는 것이다. 나는 철저히 B안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돈도 훨씬 덜 들어가고 외국 투자자의 각종 도덕적 해이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에 규율이 생길 수 있었다. 환란 후 국내외 경제환경이 급변했다. ▦무엇보다 국가경제 리스크의 구성이 변했다. 종래에는 대기업 금융부문의 리스크가 컸는데 지금은 구조조정으로 많이 줄었다. 대신 가계ㆍ정부 부문의 리스크가 확대됐다. 정부부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리하지 못한 정부가 환율을 조정하기 위해 외평채를 발행하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가계, 기업 모두 위험도가 모두 커졌다. 기업의 경우 투자위험이 굉장히 높아졌다. 종래 리스크 흡수를 정부의 은행 통제를 통한 보증과 계열사간 상호 보증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기업이 믿을 만한 건 안전한 유보자금밖에 없는 실정이다. 설비투자가 줄어든 것은 이미 다 예견된 일이다. 위기 조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한 재정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환란 후 금융이 (정부로부터)독립되면서 재정은 정부의 유일한 정책수단이 됐다. 환율 때문에 이자율 조정도 어렵고 경기조절 능력이나 위기 발생시 외부 충격을 흡수, 미래로 분산시킬 수 있는 역할을 재정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이미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세금을 통해 가격을 조절하고 복지지출 등을 재정으로 활용해야 한다. 반대로 국가부채의 급속한 증가 때문에 재정을 통한 정부의 위기 대응능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우려도 있다. ▦사실 걱정스러운 게 아직도 생산부문의 비효율성이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리스크가 더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이 상태에서 재정이 흔들릴 경우 남미 스타일의 또 다른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우리 재정여건이 위험한 상태에서 조금만 낭비하면 큰일난다. 앞으로 당분간 두 가지 형태의 위험이 공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DJ 정부에서 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이에 대한 대처를 못했다고 생각한다. 정권 브레인에 엄청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 들어 ‘비전2030’ 등 대형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데. ▦사실 예산을 써야 할 국책사업 분야는 굉장히 많다. 그러나 현 정부의 국책사업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둘 째 국책사업 자체의 비용편익이 잘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에 대한 편익이 들쭉날쭉하고 신빙성도 없다. 재정학자 입장에서는 편익을 봐야 하는데 비용이 얼마 들지 정확한 추정치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정부 태도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가부채의 범위가 너무 좁게 설정돼 있어 적자재정의 실제 규모가 정부 통계보다 훨씬 크다는 학계의 비판이 많다. ▦GDP 대비 몇 퍼센트 등으로 국가부채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하는 건 참고용은 될 수 있지만 절대적 기준은 못 된다. 국가부채의 절대규모가 OECD 수준보다 낮다는 건 요즘 잘 얘기하지 않는다. 우발채무, 잠재적 채무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평가가 다르다. 논란이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다 꺼내 놓아야 한다. 부채범위가 왜 논쟁이 되는지를 보면 결국 투명성의 문제다. 부채 논쟁은 (정부의 불투명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진국ㆍ개도국형 논란이다.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도 너무 빠르다. ▦특별한 위기 상황도 아닌데 부채비율 증가속도가 매우 빠른 게 사실이다. 이는 재정규율의 문제, 기초수지 악화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쉽게 말해 구조적 재정수지로 이해하면 된다. 세입기반은 낮은데 복지, 국방 등 지출분야가 너무 많다는 의미다. 첫번째도 두번째도 모두 걱정이다. 기본적으로 부채는 필요할 때 공적자금처럼 ‘원 샷(one shot)’으로 가는 건 괜찮다. 원샷으로 끝나고 이자만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건 기초수지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OECD와 비교해서 정부가 부채 비율이 30%라고 얘기하는 건 넌센스다. 구조적 재정수지를 개선하는 데 포커스를 맞춰야 재정규율이 제대로 돌아온다. 참여정부의 재정규율이 어떤 상태라고 보는지. ▦재정규율은 이 정부 들어서 상당히 깨졌다고 볼 수 있다. 또 아쉬운 게 왜 민영화에 대한 시그널을 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들을 바꿔야 한다. 과거 정책금융 하던 곳들의 기능을 조정해줘야 한다. 공기업의 재조정에 대해서도 정부 부문의 시그널이 약했다. 재정 규율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세금은 조세개혁의 틀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나아갔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내리는 흐름은 확신이 안 선다. 이렇게 급격히 나가는 게 과연 얼마나 좋은 지 잘 모르겠다. 현 조세체계에 상당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 듯한데. ▦세율체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무난하지만 과세 베이스가 엄청나게 협소하다. 과세 베이스가 협소해서 정치적으로도 저항이 크다. 과세베이스가 부가가치세와 법인세로 몰려 있다. 상대적으로 개인소득세 비중이 15% 정도밖에 안 된다. 주어진 과세베이스 하에서 세금을 내는 이도 얼마 안 된다. 법인세는 극소수 기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가세 등 3대 세목 모두가 그렇다. 3대 세수 비중이 50%라는 게 얼마나 위기의 징후인가. 참여정부의 경제개혁에 대한 전반적 평가가 궁금하다. ▦경제개혁은 정당성 확보가 중요한데 이 정부가 굉장히 어려운 걸 떠안았다. 개혁의 정당성을 보면 김영삼 정부는 최초의 문민정부였고,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맡았다. 결국 DJ 정부가 외환 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봤지만 신용카드 정책실패로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등 학자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위기의 ‘전이’였다. 최근 복지지출이나 통일ㆍ국방비용이 늘고 재정부문의 여력도 없어지고…. 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가 허덕거리는 것도 놀랄 일만은 아니다. 정부의 중장기 조세개편 방향을 짚는다면. ▦과세베이스를 확대하는 방식에 신중해야 한다. IMF나 신자유주의 스타일의 미국 전문가들이 국내 세제개혁 문제에 대해 자문하는 건 맞지 않다. 예컨대 비과세 감면을 철폐해서 과세베이스를 넓히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처럼 조세회피나 조세저항이 많지 않는 나라에서나 맞을 수 있지, 우리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내가 제안한 것은 오히려 조세정보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다. 미국은 조세회피가 굉장히 적고 투명하다. 신용카드가 효과적이었던 게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풀어나가야지 서구식 방법만으로는 역효과가 난다. ◇약력 ▦57년 강원 정선 ▦서울대 경제학과 ▦88년 미 하바드대 경제학박사 ▦88~94년 미 예일대 조교수 ▦89~94년 미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94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97년 IMF 방문교수 ▦2002년 미 캘리포니아대 방문교수 ▦2006년~현재 한국재정학회 회장 입력시간 : 2007/03/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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