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이 가시화됨에 따라 현지에 진출하거나 주변 국가들과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투표 결과에 따라 러시아에 자산 동결, 교역·투자규제 등 경제제재를 경고해왔기 때문에 이에 따른 현지 투자환경의 악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 교역량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고 기업들의 투자도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 봉쇄가 가시화할 경우 해당 국가에 진출해 있거나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피해를 입게 되지 않을까 고민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경제여건이 나빠질 경우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예상치 않게 커질 수도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지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있는 전자업계는 내수 위축에 따른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TV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총 2억2,800만달러를 투자한 칼루가 TV 공장을 CIS 지역의 핵심 TV 전략기지로 육성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러시아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 2006년 9월부터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 국내 가전업계 최초의 러시아 내 생산기지인 LG전자 루자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LG전자는 러시아에서 오디오·청소기·에어컨·모니터·전자레인지 등 총 5개 품목이 '러시아 국민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 가전시장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위축될 경우 입게 될 타격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11년부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러시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러시아 현지생산 비율이 50% 이상으로 높아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고 우크라이나 수출은 연간 7,000~8,000대 수준에 불과해 영향이 미미하다"면서도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에 철도 공급을 추진하던 현대로템도 시시각각 변하는 현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유라시아 횡단 철도가 본격화할 당시 러시아 철도공사 측과 협의를 진행하며 사업 참여에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아직까지는 사업이 추진되지 않아 러시아와 크림반도 상황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아직 입찰공고도 나지 않은 상황이라 별도의 직접적 영향은 없다"며 "입찰공고가 언제 날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러시아산 원유나 천연가스의 수출이 중단되면 세계 원유 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국내 정유업체들은 원유 수송에 20일이 걸리는 만큼 기존에 비축해둔 원유 재고를 높은 마진에 판매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 유리해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이에 따른 마진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화학업체 중에 러시아에 따로 특정 제품을 높은 비중으로 수출한다거나 러시아산 원유나 가스의 비중이 높은 회사는 없다. 다만 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겠지만 향후 양국 간 경제적 제재가 가해져 세계 원자재시장이 불확실해지면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거시적인 영향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만 전국경제인연합회 신흥시장팀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극동 개발을 제일의 경제정책으로 삼고 추진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이 현지 진출할 여지가 많고 이에 국내 산업계에서도 (러시아 시장 개척을)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며 "현재와 같은 제재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한국과 러시아 정상이 만나면서 무르익었던 한러 경협 분위기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조 팀장은 "러시아 경협의 핵심은 자원개발로 이를 위한 자원개발 플랜트, 수송을 위한 철도, 해운 등 다양한 업종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폴란드 등 동유럽에 공장을 두고 러시아에 우회수출하던 국내 일부 제조 대기업들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