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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권가진 '정책 컨트롤타워' 시급
입력2004-07-27 17:27:55
수정
2004.07.27 17:27:55
내각서 결정해도 위원회·로드맵에 발목<br>수도권 공장짓는데 대통령이 나서야 가능<br>과제 우선순위 정하고 추진력 확보해야
연초 야인으로 있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수장을 맡아달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삼고초려’에 “경제정책의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제 부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그는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정책의 컨트롤타워(관제탑)’를 바로 정립하는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취임 5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 부총리는 과연 경제정책의 리더십을 확보했을까. 불행하게도 상황은 이 부총리가 원했던 방향과 거꾸로 움직였다. 그는 지난 19일 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책의 뒷다리만 잡아서야 시장경제가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경제 주체들은 한국경제의 수장이 처한 초라함과 우울함을 극명하게 목도했다.
경제는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거시경제의 키를 잡고 있는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위기라고 치자. 그렇다면 해법이 뭐냐”고 되묻곤 한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수없이 말해도 정부가 말을 듣지 않으니”라고 씁쓸해 했다.
민간의 경제 전문가들은 불황해결의 해답은 가까운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진실되게’ 얘기한 뒤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제정책의 리더십을 복원할 것 ▦그리고 100년 앞을 내다보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는 우리 경제가 지금 처한 불행을 해결하는 가장 직설적인 ‘팩트’다.
참여정부는 출범 이후 토론과 대화 중심의 다원적 민주주의와 이를 토대로 선진국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점을 국정 중심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는 청와대 산하에 설치된 12개의 ‘위원회’다. 동북아시대위원회,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빈부격차ㆍ차별시정위원회…. 그럴싸한 이름의 각종 위원회가 국가 정책을 휘감고 있다.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7개 분야에서 253개에 이르는 로드맵을 내놓았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어느 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고 로드맵 속에 뭐가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의아해했다. 경제 부처에서는 “각종 위원회가 ‘제2의 내각’처럼 돼 있다”는 말도 곧잘 나온다. 내각에서 힘들게 결정한 정책도 위원회의 방향(정체성)과 맞지 않아 지지부진한 게 한둘이 아니다.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가 그렇다. LG필립스LCD 파주공장 설립이나 삼성전자 아산 탕정단지 등은 결국 대통령이 나서야 해결됐다. “공장 하나 짓는데 왜 대통령이 나서야 하느냐.” 기업들의 불만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몇백개 국정과제를 나열하는 게 비전의 개념이 아니다”며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전경련 회장단이 모인 적이 있다. 경제계 원로들까지 참석한 이날 만찬에서 재계 총수들이 꺼낸 내용은 뜻밖에도 “박정희식 리더십이 그립다”는 것이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한 고위관계자는 “재계가 원하는 것은 독재체제가 아니라 국가 정책의 추진력”이라며 “경부고속도로 만드는 데 2년반 걸렸던 게 고속철도를 하는 데는 12년이 걸리고, 신도시 발표부터 초기 입주까지 3년 걸렸던 게 판교 신도시 만드는 데 도대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서울 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새만금간척사업,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사업…. 현 정부 들어 표류해온 대형 국책사업은 국가 정책의 관제탑이 흔들리는 단면들이었다. 그리고 이 속에서 국민들은 극심한 피로증후군에 빠졌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기업들이 말하는 불확실성은 진보나 보수와 같은 정책방향이 아니라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집행의 효율성인데 정부가 자꾸 오해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사업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예스’와 ‘노’를 결정해주는 주체가 없고 결정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상처난 리더십은 각종 미시ㆍ거시정책에 그대로 연결되고 있다. 기형적 형태로 결론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논란이 일고 있는 공직자 백지신탁 문제. 이 부총리는 이를 시장경제에 배치되는 대표적 예로 삼았다. 대통령까지 포함해 난상토론 끝에 결론난 사안을 경제수장이 뒤늦게 불만을 토로하는 광경은 이 순간에도 우리 경제의 리더십에 구멍이 나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윤혜경기자 ligh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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