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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이데올로기가 해체되었다는 말이 참으로 요란스럽게 세상을 풍미하고 있다. 소련이 무너지고 전세계가 자본주의라는 일극체제로 넘어가면서 누구더러 또는 어떤 정권보고 『좌파냐 아니면 우파냐?』고 묻는다면 지극히 어리석은 우문으로 취급받는 세상이다.대다수 정치·경제 학자들은 좌우대립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면서도, 그중에서도 특히 『좌파가 주장해 온 평등주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리타분한 이데올로기이다』라는 꾸짖음이 거리낌 없이 통용되는 세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로 인한 IMF(국제통화기금)한파라는 된서리를 맞은 탓인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여기에다 유럽의 새 유행인 「제3의 길」을 원용한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이 제 철을 만나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노르베르토 보비오가 쓴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좌파냐 우파냐」는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94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어 한 해에 2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이 책은 당시 이탈리아 정국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다시 평등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보비오의 주장은 좌우대립의 해체를 곧 평등주의에 대한 단죄로 이해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1909년에 태어나 인류 현대사의 온갖 굴곡을 체험했던 보비오는 우선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휴가철에 시골에 가서 그 곳 친구들과 놀았는데, 우리 집과 시골 친구들의 집이, 우리가 먹는 음식과 시골친구들이 먹는 음식이 전혀 다른 것을 의식할수 밖에 없었다. 매년 휴가를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놀이 친구 중의 하나가 지난 겨울에 결핵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했다. 도시의 학교 친구 중에는 한 아이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보비오는 만약 지금도 결핵으로 죽어가는 소년이 있다면, 이같은 불평등이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해서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만약 평등 개념을 중심으로 좌파와 우파를 구별할수 있다면 인류는 여전히 좌우 구분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보비오에 따르면 좌와 우의 모순을 뛰어넘었다는 「제3의 길」이 매우 위험한 길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원칙적으로 「제3의 길」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 정책 내용상 평등을 신장시키는 좌파적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평등을 손상시키는 우파적인 방향으로 나갈수도 있다. 보비오의 주장은 이처럼 핵심적인 질문을 생략한 채 제3의 길이라는 초월적인 신기루에 현혹되다가는 정치의 핵심을 놓치고 말 것이라는데 모아진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는 합리화나 구조조정등을 통해 소수만이 자유를 누릴 것이냐, 아니면 평등이라는 개념을 버리지 않고 경제적 부와 사회적 기회를 더욱 평등하게 분배할 것(물론 소비에트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이냐의 여부가 여전히 중요한 화두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박순열 옮김. 새물결사 펴냄. 7,000원. 【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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