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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문화를 바꾸자] `차보다 사람우선' 교통문화 정착 시급
입력1999-02-25 00:00:00
수정
1999.02.25 00:00:00
『한국이라는 나라는 10대운전자들만 있는 것 같아요. 마치 캘리포니아의 전형적인 10대운전자들을 연상케 하죠.』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어느 미국인 강사의 말이다.
아슬아슬하고 불법적인 차선 변경, 차간 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채 앞차의 꽁무니를 바싹 따라붙는 운전이 미국의 10대 폭주족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바로 우리 운전문화의 현주소다. 무엇이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이해할 능력과 경험을 갖지 않은 10대처럼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과속운전을 하고, 법규를 어기는 것이 일상화된 운전문화다.
지난해말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1,047만대에 이르고 세계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했지만 교통문화는 여전히 선진국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에는 교통문화가 없다=교통개발연구원이 얼마전 서울에서 직접 운전을 하는 외국인 1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의 교통문화현실을 가장 정확히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모국 교통문화수준을 100으로 잡았을 때 우리나라 교통문화 점수에 대해 미국인은 36.6점, 일본인은 43.2점, 유럽인은 40점으로 각각 응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운전 습관중 가장 잘못된 것은 「차선변경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끼어드는 것」이었다.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또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차종에 대해 버스(36%), 택시(24%)의 순으로 답해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중교통수단들이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외국인들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버스·택시가 법규를 위반해도 처벌하지 않는 관행 때문」 이라고 지적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한다고 봐준 것이 운전자들을 교통예절을 망치는 주범으로 만든 꼴이 됐다는 것이다.
조사에 응답한 외국인들은 특히 80%가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태도가 「공격적」이라고 봤다. 「방어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2%에 불과했다. 교통법규 준수여부도 단 3%만 잘 지키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 모 방송에서는 우리나라 대도시를 중심으로 교통현장을 비춰가며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운전자를 발굴해서 양심있는 운전자로 치켜세우며 냉장고를 선물로 주기까지했다.
황덕수 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처장은 『교통사고는 무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내가 지켜야 할 예절을 잘 이행하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잘못된 교통문화는 사회적 비용이다=지난 97년 한해동안 전국의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다친 건수는 총 24만6,452건에 이른다. 이에따라 1만1,603명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는 34만3,159명에 달한다. 교통사고때 사상자의 의료비나 차량수리비 등은 사회적 비용이 된다. 도로교통사고비용을 추정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총생산손법과 개인선호성산출법이 주로 쓰인다. 교통사고비용은 생산손실비용과 차량손실비용, 의료비용, 행정비용 및 PGS(PAIN, GRIEF & SUFFERING)비용으로 이뤄진다. PGS비용이란 교통사고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가 겪는 정신적·물질적 교통을 비용으로 환산한 것. 97년 한해동안 발생한 전체 도로교통사고에 대한 총 교통사고비용은 PGS비용을 빼고도 7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PGS비용까지 포함하면 총비용은 11조원을 넘는다. 현재 건설이 한창인 서해안고속도로를 2개 건설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차량우선정책이 사고를 낳는다=전문가들은 교통문화 부재의 가장 큰 원인이 사람보다 차를 우선시하는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큰 길에서는 물론이고 좁은 골목길에서조차 사람이 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상당수 도로가 보차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채 차와 사람이 서로 뒤섞이는데 문제가 있다. 사람이 다녀야 할 보도에 버젓이 차가 올라서 있고 차량 한쪽은 인도에, 한쪽은 차도에 걸쳐 있는 이른바 「개구리주차」가 일반화된지 오래다.
비교적 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는 분당·일산 등 신도시에서는 거의 매일 교통사고목격자를 찾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교통선진국으로 불리는 호주의 경우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사람이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은 전적으로 차량에게 지우고 있다. 사람을 교통정책의 가장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교통정책 결정과정에서 사람은 2차적인 요소로 전락하고 만다.
도로를 새로 만들 경우 일단 대충대충 횡단보도를 만들어 놓고 나중에 필요하면 신호등을 설치하거나 횡단보도를 다시 그리는게 다반사다. 애시당초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은데 따른 결과다.
심지어 도로교통법의 조항중 「차량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추상적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미국 등이 「차량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지나갈 때는 멈춰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과 대비된다.
교통안전에 대한 조기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어려서부터 교통안전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기관조차 전무하다. 운전면허시험이나 운전자 재교육에서 이뤄지는 안전교육 역시 형식에 그치고 있다.
교통개발연구원 설재훈 도로교통실장은 『우리나라는 도로교통법이 보행자보다는 운전자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며 『도로정책의 기본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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