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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합병 승인] 투기자본 무릎 꿇린 '팀 삼성'의 힘… '미래'가 '허구논리' 이겼다

■ 어떻게 이겼나

CEO부터 직원까지 설득 총력… 국내외 기관·소액주주 표심 잡아

엘리엇의 집요한 공격에도 논리적으로 대응해 결국 승리

최치훈(왼쪽부터)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과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 윤주화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 김봉영 제일모직 건설·리조트부문 사장이 합병안이 통과되자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은 태스크포스(TF)와 일종의 상황실 개념인 워룸(war room)을 운영하며 합병 성사를 위해 달려왔다. /송은석기자


삼성물산의 합병안건을 처리하는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 17일 오전 삼성그룹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부 분석 결과 합병 성사가 유력하다는 판단은 이미 내렸지만 위임권을 중복 투표한 주주도 상당수 있어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관련법상 특정 주주가 위임장을 삼성물산과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모두 맡겼을 경우에는 시간의 선후를 따져 늦게 받은 쪽이 유효표를 얻게 된다. 찬성인 줄 알았던 주주가 사실은 반대표를 던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날 오후1시께 69.5%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합병이 성사되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삼성 내부에서조차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과 소액주주 등이 삼성의 미래에 대해 손을 들었다"며 "겸허한 자세로 회사 출범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표심(票心)이 승패 갈라=17일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의 결과는 부동층이었던 소액주주의 표심이 결국 이번 판세를 결정지은 핵심 키워드였음을 보여준다.

애초 삼성물산은 계열사와 오너 일가 등의 특수관계인(13.82%), KCC(5.96%)와 국민연금(11.21%) 외에 11%가 넘는 국내 기관투자가를 합치면 42% 정도의 우호지분을 획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삼성물산이 얻은 전체 주식 총수(1억5,621만7,764주) 대비 합병 찬성률은 58.91%다. 그동안 최치훈·김신 사장 등의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임원과 일반 실무자까지 전 임직원이 직접 발로 뛰며 모은 17%가량의 표심이 결국 합병 승인을 위한 마지노선(55.71%)을 훌쩍 뛰어넘는 찬성률(69.5%)로 이어진 셈이다.

특히 최 사장은 합병 결의 이후 해외 기관투자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유럽과 동남아 등을 수시로 오갔으며 주총 직전까지 외국에 머물며 설득 작업에 열을 올렸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22.3%의 소액주주 가운데 10% 이상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며 "그외에 외국인투자가 중에서도 상당수가 의결권 자문기관의 반대 권고에도 불구하고 삼성 쪽으로 마음을 돌리면서 예상보다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숨 가빴던 44일…'미래'가 '투기적 이익'을 이겼다=지난달 4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으로 시작된 44일간의 승부를 되돌아보면 시종일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마지막까지 판세를 장담하기 힘들었던 이번 싸움에서 삼성 측이 예상을 뛰어넘는 찬성률로 승리를 거둔 것은 '논리 싸움에서 엘리엇을 압도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엘리엇은 지분을 매입한 지 5일 만에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총회 통지 및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이번 다툼을 법정 싸움으로 몰고 갔다. 이튿날 삼성물산이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자 곧바로 엘리엇은 이에 대한 무효를 주장하는 가처분 소송을 냈다.



법정에서 비율 산정과 자사주 매각 등이 모두 법적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졌음을 강조한 삼성 측은 결국 2건의 소송에서 모두 완승을 이끌어냈다.

또 한 번의 고비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합병 반대'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찾아왔다.

ISS는 외국인은 물론 개인 투자자들에게 특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한 표가 아쉬운 삼성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도가 뻔히 보이는 투기자본의 편을 든 보고서에는 허점과 오류가 적지 않았다. 삼성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ISS 보고서가 나온 지 이틀 만인 7월5일 삼성물산은 곧바로 반박 자료를 통해 합리적인 설명 없이 삼성물산의 주가 상승을 전망하고 있다는 점,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는 11만원을 삼성물산 목표주가로 제시해 합병 비율을 산출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줄기찬 합병 반대와 소송 제기 등 집요한 엘리엇과 해외 기관의 공격에 허점으로 점철된 논리를 파고드는 치밀함으로 응대한 셈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하기보다 논리 싸움으로 맞대응한 삼성의 전략이 효과를 봤다"며 "국민연금 등의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이 똘똘 뭉친 '팀 삼성'이 해외 투기자본을 굴복시켰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번 합병이 무산될 경우 한국 자본시장이 외국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주주들의 결집에 한몫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 장치가 부족할 뿐 아니라 강력한 공정거래법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해외 투기 펀드에 우리 기업이 농락당하는 나쁜 선례가 생기면 국가 경제의 미래도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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