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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라이프] '이름만 디지털'도 잘팔리네
입력1999-09-10 00:00:00
수정
1999.09.10 00:00:00
김효정 기자
지금 미국에선 전화기·TV·온도계 등에 이어 전구, 토스터기와 장난감 자동차까지 상품명에 디지털이란 수식어를 단 제품들이 각종 광고에 넘쳐나고 있다. 디지털이란 말이 붙지 않은 신상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이는 기업들이 소비자들은 디지털하면 바로 첨단기술로 인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더우기 디지털 제품들은 아날로그 제품들에 비해 고가에 팔리고 있어 기업들이 거둬들이는 이윤폭도 높다.
월풀이 내놓은 「디지털 토스터기」의 판매가는 89.99달러. 이는 이 회사의 구형 아날로그 토스터기보다 두 배나 비싼 금액이다. AV 제품을 생산하는 멤텍사의 「디지털 헤드폰」은 9.99달러에 팔리고 있다. 비슷한 기능의 아날로그 제품이 4.99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 제품이다.
월풀의 브랜드 매니저 스리 구루라이는 『디지털이란 단어는 일종의 프리미엄을 준다』며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디지털 제품을 팔고 있음을 인정했다. 멤텍의 디지털 헤드폰의 경우 음향재생 범위가 18~2만㎒로 아날로그 제품의 20~2만㎒와 별 차이가 없다. 극히 일부의 음악감상자들만 두 제품의 미세한 기능차를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원래 디지털은 연속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아날로그와 달리 불연속적인 수치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했다. 바늘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아날로그 시계와 숫자가 변하면서 시각을 표시하는 디지털 시계를 비교해보면 보다 쉽게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디지털은 파동이 아니라 숫자로 표현되는 정보를 가리킨다. 컴퓨터는 0과 1만의 조합만으로도 단어, 음향, 동화상 등의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숫자와 관련된 건 모두 디지털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조명기구 업체인 컬러 키네틱스는 발광다이오드(LED)를 채택한 「디지털 전구」를 내놓았다. 닛코 아메리카사는 「디지털 핸들」을 장착한 고가의 리모컨 자동차를 내놓고 새로운 것에 민감한 동심을 유혹하고 있다. 극장업자들은 대부분 릴에 감긴 필름을 영사기에 돌려 상영하면서도 음향 시설만 바꾼 극장을 「디지털 상영관」이라 홍보한다.
엄밀히 말해 이들 제품들은 「무늬만 디지털」이다. 데이터를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제품의 작동원리가 디지털인 것도 아니다. 기존 아날로그 제품에 일부 디지털 부품을 채택한 것에 불과하다. 작은 변화를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제품인 양 호들갑을 떤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미 번역·출간된 「디지털 경제를 배우자」,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 등의 저자인 돈 탭스콧은 이런 현상이 디지털 혁명의 중요성을 확인해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디지털이란 산업과 사회에서 진행중인 전면적인 변화의 흐름을 가리킨다』며 『디지털이란 단어가 잘못 사용된다고 해서 개념의 중요성마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벌써 디지털과 거리를 두려는 회사도 있다. 인터넷 상으로 식품과 주방기구를 파는 디지털 셰프사는 지난달에 이탈리아어로 식탁을 의미하는 타볼로로 회사명을 바꿨다. 이들은 디지털이란 말이 지나치게 기술적으로 들린다며 과감히 회사이름을 바꿨다.
이 회사 케빈 애플바움 사장은 『가능하면 디지털이나 사이버 같은 단어들과 거리를 두고 싶다』며 『고급 식품과 주방기구에도 디지털이란 말을 사용하면 소비자가 호감을 가지리라고 기대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김효정기자GADGET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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