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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돈이 안돈다] 2. 채권시장 기능부터 살리자
입력2000-06-20 00:00:00
수정
2000.06.20 00:00:00
홍준석 기자
[긴급진단/돈이 안돈다] 2. 채권시장 기능부터 살리자시중에 돈은 많은데 정작 쓰려면 없다. 필요한 곳에 돈이 없기 때문이다. 또 돈을 가진 곳도 몸을 사려 쓰기를 주저한다.
자금시장이 정상적인 흐름을 보이기 위해서는 채권의 최대 수요처인 투신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은행으로 빠져나간 뒤 다시 유입되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한마디로 기업자금줄인 채권시장이 마비됐다는 이야기다.
사실 신뢰상실로 자금이탈이 계속되고 있는 투신은 채권매수 여력을 잃은 지 오래다. 올들어서만도 공사채형 수익증권 수탁액이 47조원이나 급감했다. 오히려 만기자금을 고객에게 돌려주기 위해 현금을 확보하는 데 급급하다. 이러니 기업들의 차환발행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종금업계도 남을 돌볼 처지가 못된다. 최근 발표된 실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절반이 넘는 종금사가 적자상태이고 한국종금 등은 자금악화설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연초보다 3조3,000억원 가량이나 수신액이 줄어들었다. 생존을 위해 기업에 빌려준 자금을 급속히 회수할 수밖에 없다.
반면 돈이 몰리는 은행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당장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는 데만 급급할 뿐이다. 잠재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대출을 해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저축성 예금은 46조원이나 증가했지만 신탁자산은 오히려 20조원 이상 감소했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자금시장은 악순환의 연속이다. 돈이 없으니 채권을 살 수 없고 채권시장이 위축되니 기업들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불안한 고객들의 자금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느냐는 격이다.
덩달아 다음달부터 시행될 채권시가평가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팀의 한 관계자는 시장 자체가 죽어 있기 때문에 시가평가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분석했다. 원칙적으로 펀드 내에 부실채권이 생겨 손실이 일어나면 자체적으로 팔아 그 부분을 해결해야 되는데 현 시스템상으로는 유통시장이 소화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펀드매니저가 자율적으로 채권을 사고 파는 게 불가능하다』며 『채권시장 마비현상은 갈수록 정도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 해결책은 없을까. 증시전문가들은 정부가 과감하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중에서도 신뢰회복을 통한 투신권의 자금중개 기능을 하루 빨리 회복시켜 채권시장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승희 현대투신증권 채권전략팀 선임연구원은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가 자금난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불안한 시장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는 시장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물리적인 자금지원보다 시중의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도록 적극적이면서도 투명한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기현 삼성증권 연구위원도 『투신권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고 자금중개 기능을 개선하는 게 문제해결의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 투신사 구조조정을 비롯해 금융권 구조조정작업을 시급히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위원은 대증요법이 아니라 원칙에 입각한 정공법이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기적으로는 투신권의 수요기반 확충을 통한 채권시장 활성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안동규 한빛투신운용 이사는 투기등급에 투자하는 비과세 상품의 경우 가입한도를 늘려주거나 25%인 회사채보증 비율을 5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 등도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해 고려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특히 유동성이 풍부한 은행권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손실발생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건의 인센티브를 내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준석기자JSHONG@SED.CO.KR
입력시간 2000/06/2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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