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은행 경영진이 아닌 사외이사들이 경영 안건을 이사회에 직접 상정해 통과시켰다는 점인데, 이런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건호 행장 등 은행 경영진의 의견은 이 과정에서 배제됐다.
사외이사들의 결정은 당국의 제재를 앞두고 기존의 '유닉스 시스템 변경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내부 갈등 봉합 시도는 사라지고 각자 책임만 피하겠다는 이 같은 행보에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이날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주 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벌어진 IBM의 행위에 대해 공정위에 불공정거래 혐의로 신고할 것을 결의했다. 6명의 사외이사들이 주축이 된 이날 이사회는 "IBM의 가격 정책이 독점 이윤의 추구를 위해 '사회적 후생(최대 생산과 최대 고용)'을 가로막는 시장 폐해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공정위 신고 이유를 밝혔다.
사외이사들이 문제 삼은 것은 주 전산기 시스템의 월간 사용료 26억원을 내년 7월 계약 만료 이후 89억원으로 할증한다는 IBM과의 계약 내용이다.
주 전산기 교체가 늦어지면서 국민은행은 기존의 계약기간 만료 후인 내년 7월 후 IBM 측에 거액의 할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에 대해 사외이사들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라며 IBM 측과 완전한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은행 경영진은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사외이사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의 제재가 완료된다 해도 이사회 멤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주 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국민은행 내분 사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이 IBM과 완전히 결별을 선언한 것이니만큼 향후 IBM과의 재협상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은 이날 임영록 회장과 이 행장 및 사외이사 등 KB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구체적으로 확정해 제재심의위원회 위원들에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적극적인 소명에도 불구하고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는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가 유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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