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자 정부가 비관과 낙관을 오가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으며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협상의 난제가 많고 주변 여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종훈 한미 FTA 우리 측 수석대표는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선을 다해도 상대편이나 우리 측 요인으로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며 FTA 협상 결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의 발언은 전날 노무현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에 대해 “협정 체결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손해를 보면서 무조건 하진 않겠다”고 한 발언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스위스 다보스에서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 오후(현지시간)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1시간30분가량 한미통상장관 회담을 갖고 오는 2월 워싱턴 7차 협상에서 상호유연성을 발휘해 진전을 이루기로 했다. 한미 FTA 타결 여부를 놓고 정부가 냉탕ㆍ온탕을 오가는 첫번째 이유는 양국의 정치 지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 FTA 협상은 국민적 지지나 여론 수렴을 바탕으로 출범하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나마 노 대통령의 의지가 각별해 정부가 적극 나섰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면치 못하고 정권 말 레임덕이 가시화하면서 협상단은 기댈 곳마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리더십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꺾인 게 느껴진다” 며 “잘못하다간 ‘협상단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 역시 보호무역 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데다 부시 행정부도 임기 말이어서 적극성을 띠기가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실무협상마저도 쉽지 않다. 막판이어서 어려움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지만 그래도 난제들이 너무 많다. 무역구제ㆍ자동차ㆍ의약품은 물론 개성공단, 농산물, 서비스시장 개방 등 조율해야 할 핵심쟁점의 양국 시각차가 크고 기타 분과의 협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뼛조각 쇠고기 문제를 미측이 한미 FTA 협상과 연계하며 조속한 타결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뼛조각 쇠고기 문제를 가볍게 처리하면 국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 쟁점들은 마지막에 주고받기로 풀 수밖에 없지만 정치권이나 국민 지지가 분명하지 않아 섣불리 결정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FTA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불투명하니 정부도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두기 위해 원론적 수준의 비관론과 낙관론을 오가는 측면도 있다. 협상연기나 중단 가능성도 열어둬 최악의 상황은 면하자는 생각과 함께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대미 양보 논란을 최대한 비껴가기 위해서다. 협상단 관계자는 “협상단 내부에 초기에는 ‘FTA 안 하면 안 된다’는 각오가 대단했다”며 “지금은 ‘목숨 걸고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많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