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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 경영학] <6>대우종합기계
입력2002-04-18 00:00:00
수정
2002.04.18 00:00:00
[재기 경영학]대우종합기계뼈깍는 몸집줄이기 끝 '햇볕'
대우종합기계가 2년 3개월만에 워크아웃에서 졸업하던 지난해 11월 30일. 이 회사 임직원들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이는 단순히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는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그동안의 고생들이 교차하면서 다시금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눈물이었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대우그룹의 몰락과 함께 지난 99년 8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강력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으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어깨를 짓눌렀던 것은 외부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부실한 재무구조와 방만한 경영으로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간 주범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그동안 피땀으로 개발한 독자기술과 해외 마케팅능력의 결과는 온데 간데 없었다.
하지만 대우종합기계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다. 양재신 대우종합기계 사장은 "주주, 채권금융기관, 협력업체, 고객 그리고 임직원 모두의 전폭적인 성원과 노력 덕분"이라고 밝혔다.
대우종합기계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당시 재무구조는 엉망이었다. 채권은행도 이 상태로는 경영정상화가 어렵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그대로 문을 닫을 수 없었다.
대우종합기계의 굴삭기ㆍ지게차와 공작기계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었고 한국 기계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권은행은 당시 대우중공업을 조선부문과 기계부문으로 분할하는 것이 회사를 회생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 2000년 10월 23일 기계부문을 떼내, 신설회사의 등기절차를 마쳤다.
이어 채권은행은 출자전환을 통해 재무구조를 대폭 개선시켰다. 자신들의 실력으로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
직원들도 이에 동참했다. 노조는 워크아웃 이후 2년 연속 분규없이 임금ㆍ단체협상을 타결지었다. 내부체질을 개혁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실시한 6시그마운동, 품질회의체 운영, 직별 목표관리제도 운영 등 수익성ㆍ품질ㆍ공장 혁신활동에 직원들은 인내와 끈기로 견뎌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뒤따랐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통폐합ㆍ분사 등을 통해 과감히 없앴다. 직원수도 99년 8월말 6,776명에서 지난 2월말 현재 4,407명으로 35%나 줄였다. 한국철도차량의 지분과 소결공장 매각 등 보유자산의 매각도 강력히 추진했다.
국내외 영업활동도 대폭 강화했다. 회사분할과 독립회사 출범으로 기업 이미지가 개선되면서 지게차와 공작기계 등의 대형수요업체에 대한 매출이 증가세로 돌아섰고 바우마전시회ㆍ프랑스물류전시회ㆍ중국국제공작기계전시회 등에서 대우 제품을 찾는 바이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신설회사로 출범한 2000년 4ㆍ4분기에 69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던 경영실적은 이듬해 1ㆍ4분기에 흑자로 돌아선데 이어 지난해에는 84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양 사장은 "이제 남은 것은 회사를 세계적인 우량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의미를 몸소 깨달은 대우종합기계가 새로운 불꽃으로 피우고 있는 '세계초일류기업'에 대한 의지는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조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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