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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쇼크] "국가·개인 고통분담 다원적 복지로"
입력2002-11-05 00:00:00
수정
2002.11.05 00:00:00
■ 전문가 좌담'고령화로 인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물론 사회 구성원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42주년 기획ㆍ연재한 '고령화쇼크, 무엇을 할 것인가'시리즈를 마치면서 마련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나누는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세대간ㆍ계층간 갈등을 피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과 노인 및 여성인력의 적극적 활용을 고령화사회 진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 사회=고령화에 따른 충격을 막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노인들을 위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야 하고 열악한 사회복지시설도 확충해야 합니다.
또 연금개혁의 고삐도 바짝 당겨야 하고, 여성, 이민, 노동정책도 많이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쌓인 과제가 산더미처럼 많다는 얘긴데 무엇부터 풀어야 할까요.
▲ 차흥봉 교수=이제 정부도 고령화 사회 문제를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총리실에서 내놓은 고령화대책위원회 작업도 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70년대 후반입니다. 산업화ㆍ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사회구조가 변했고 이에 따라 정부도 노인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정부는 80년대 초부터 20년간 노인복지법, 국민연금법, 고령자고용촉진법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노인복지 정책은 틀을 마련한 수준이지 안에 내실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을 하나 만들었지만 살림을 장만하지 못한 형국입니다. 이제 집안을 채울 본격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 변재관 부연구위원=서구사회는 100여년간 하나의 제도가 만들어져 성숙하면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줄이는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우리나라는 20년 만에 압축적으로 제도를 만들다 보니 현실과 제도 간에 갭이 벌어진 상태입니다. 이번에 정부종합대책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진일보 했습니다.
첫째 보건복지부 소관이던 일이 약 10여 개 정부부처의 조정과정을 거쳤습니다. 모든 국민이 걸려있는 문제로 인식한 겁니다.
둘째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 위주의 선택주의적 관점에서 일반 국민이라는 보편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셋째 양적 확대에 급급했던 정책이 질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지역단위 한계를 인식하고 공공-민간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패러다임이 전환된 셈입니다.
▲ 이혜훈 박사=지금 노인들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서있는 가장 억울한 세대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큰 문제의 일부분입니다. 우리 사회구조가 전혀 다른 형태로 변화하면서 나올 문제들이 더 심각합니다. 젊은 세대가 복지비용 부담하기 싫다, 일 안 하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55세만 되면 연금을 받고 놀 수 있는데 누가 일하고 세금 떼이고 연금 내겠습니까. 고령화 사회의 지각변동을 해소하긴커녕 문제만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가 황금기를 누렸던 50~60년대에 국가책임이 강조됐지만 90년대 들어 다원적 복지국가, 즉 국가, 기업, 가족 등이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인정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제 정부는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모두가 분담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 차 교수=노인인구가 급속도로 많아지고 고령화 문제가 쇼크로 다가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인식해선 안됩니다. 앞으로 20~30년 이후 노인문제를 생각해보면 대상인 노인부터 달라집니다.
학력이 다르고 경제적 수준이 다르고 건강상태도 다릅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사라집니다.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직장에 다니고 저축했던 세대가 노인이 됩니다.
정부는 이 같은 노인문제에 사회연대성의 원리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도 많은데 노인 일자리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하는 논리는 이를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이 안 하던 일을 노인들이 찾아서 하고 젊은 사람이 줄어들면서 생긴 일자리를 노인이 보완해가는 '윈윈 게임'으로 봐야 합니다.
연금문제도 그렇습니다. 나눔의 원리를 배제하고 시장원리, 개인책임만 앞세우다 보면 기초생활 보장을 받지 못하는 노인은 훗날 국가의 불안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 변 위원=하지만 사회적 리스크는 결국 사회 전체의 부담이라는 점에서 고령화 문제가 쉽게 해결되긴 어렵다고 봅니다.
연금, 건강보험, 노인의 사회활동 참여 등에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합니다. 연금제도는 보완재로 그 역할이 이미 바뀐 상태입니다.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연금제도는 이미 역사적 사명을 다했습니다. 아무리 기술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소용이 없다는 건 유럽에서 한계가 여실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결국 근로능력과 욕구를 부여해서 이들이 사망하기 전까지 가능하면 소득이 발생하는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게 최선입니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노인을 일하게 하는 건 생산능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사회에선 필수 불가결한 일입니다.
보건사회연구원 자체 조사결과 노인을 위한 새 일자리는 40만 개 정도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때 서구와 다르게 고령자의 참여를 고려한 개발이 중요합니다. 숲 안내인, 보조교사 등 실용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도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 이 박사=여성노동력을 활용하는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여성문제는 고령화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 출산율을 올리면 인구의 고령화 문제가 해소됩니다.
여성 노동력을 잘 활용하면 고령화 결과 저해된 생산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입니다. 서비스 시장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노동집약적인 사업인 만큼 신규시장 창출이 활발히 전개할 수 있고 이를 떠받드는 재정에도 역시 도움을 줍니다. 그 예로 교육서비스의 경우 고령화 사회를 맞아 오히려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차 교수=노인취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사회운동도 중요합니다. 한국에선 특히 '체면 문화'가 노인취업에 상당한 걸림돌이 됐습니다.
한 회사의 부장으로 있다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가면 창피하다는 인식이 그런 예입니다. 일본에선 지난 80년대 오사카 시장이 그 시청 수위로 다시 재취업한 적이 있어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내에 체면문화를 바꾸기 위한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됐습니다.
우리도 사회지도층과 언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노인대책 만큼 유병장수, 즉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들에 대한 대책도 중요합니다. 일단 숫자가 자꾸 불어나는 데다 가계는 물론 국가의 의료보험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장기요양 대상 노인들을 집에서 돌볼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누가 장기요양에 들어가는 돈을 책임질 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순전히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건 가혹합니다. 요양보험 등을 통해 사회가 공동으로 이를 조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 변 위원=성장의 발목을 잡는 사회정책은 지양해야 합니다. 중산층의 피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서구사회의 경험을 보면 약자를 위해 시작했다고 해도 철저히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중심 정책인 만큼 강도 높은 사회정책을 추진하긴 어렵습니다. 사회보험과 조세부담은 적절히 혼합된 스타일이어야 합니다.
▲ 이 박사=개인부담을 먼저, 국가부담을 다음으로 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영국의 경우 국가보험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노인이 병원에 넘칩니다.
개인부담이 없다 보니 자잘한 병까지 병원에서 해결하려는 노인이 예약 리스트를 채우고 일반인들은 오히려 때 맞춰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피해를 입기까지 합니다.
노인들에게 비용의식이 없는 겁니다. 개인에게 부과하지 않으면 영국처럼 되는 건 불 보듯 뻔합니다. 결국은 조세부담은 근로세대의 부담이고 이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갈등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비용을 내가 아닌 남이 낸다면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각자가 낸 만큼 받는다는 비용의식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경제원리에도 맞습니다.
▲ 차 교수=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는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가져올 것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만도 수 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노인문제를 해결할 때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생각하면 해결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합리적일 필요는 있지만 사회공동체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경제와 복지라는 수레바퀴는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층 간의 갈등, 사회불안이 불가피 합니다.
▲ 변 위원=전반적이든 부분적이든 실제로 적용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부담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긴 힘듭니다.
현재 8~10개 모형을 4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2004~2005년 경 시군구 단위로 직접 시험해볼 예정입니다. 우리에게 적합한 길을 찾는 게 급선무입니다.
이번 서울경제 시리즈는 고령화 쇼크를 위기의식으로 지적한 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고령화 사회 문제는 제도로 접근하기 보다 사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의료보험, 연금 등의 단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 한 가족, 한 지역의 문제이며 그 안엔 문화적 의미도 포함돼 있습니다. 일회성 깜짝 이벤트가 아닌 연달아 이어진 고구마를 차례로 뽑는 일로 보면 될 겁니다.
▲ 이 박사=최근 군인, 사학, 공무원연금 지급기준을 임금상승률에서 물가상승률로 바꾼 일이 있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움직임 아니겠습니까. 국민적 합의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앞서 국민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고령화가 가져올 충격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좀 더 길게 봐야 합니다.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회보장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선진국들이 고생하는 것도 지키기 힘든 복지약속을 남발했기 때문입니다. 잠깐은 힘들겠지만 개인들의 책임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 참석자: 차흥봉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혜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변재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사회=박동석 기자
정리=이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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