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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외제병」 오명 씻을때(경제를 살리자)
입력1997-04-02 00:00:00
수정
1997.04.02 00:00:00
이세정 기자
◎대형TV서 와이셔츠까지 외국산 일색/저축률 해마다 하락… 기업투자 “발목”지난 연말 영국의 한 특급호텔에 묵었을 때 셔츠를 입지 않고는 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적이 있다. 특급호텔인데도 실내온도가 섭씨20도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겨울에도 방안이 더워 얇은 옷을 입어야 하는 국내의 일부 아파트와는 영 딴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실내온도를 가구별로 조절할 수 있는 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기름이나 도시가스를 펑펑 써가며 겨울철에도 실내에선 더워 땀을 흘리는게 우리 현실이다. 지난해 원유수입액은 무려 1백44억달러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지만 소비수준은 2만달러를 훨씬 넘는다는 비아냥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경기침체 국면에서도 외국에서 수입된 소비재는 전년보다 21.2% 증가한 1백69억4천만달러어치에 달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외제 브랜드 일색이다. 국내서도 우량상품이 생산되는 넥타이, 와이셔츠까지 비싼 로열티를 주면서 피에르 카르댕, 이브 생 로랑 등 외제 브랜드를 붙여야만 잘 팔리는 실정이다. 제품의 질, 가격은 뒷전이고 일단 유명 브랜드만 찾는 식이다.
최근 대형 소니 컬러TV가 국내에 상륙, 불티나게 팔려나가 가전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수입선다변화제도 때문에 일본제품의 수입이 금지되자 소니사가 미국 공장에서 만든 33인치 대형 컬러TV로 한국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 TV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아 음성다중기능 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데도 소니사 제품이라는 브랜드 인지도만으로 순식간에 시장점유율 10%를 넘어섰다는 후문이다. 또 미국에서는 한벌에 기껏 2만원대인 청바지가 국내에서는 10만원대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유명 외제브랜드라면 앞뒤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선호하는 외제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경제의 경쟁력 약화, 경기침체의 원인을 정부의 정책실패, 기업의 안이한 경영자세뿐 아니라 소비자의 왜곡된 소비풍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공보처 여론조사에서 과소비가 심각하다는 응답은 93%였지만 막상 자신이 과소비하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국민 대부분이 「나는 건전소비, 남들은 과소비」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결과다.
이같은 풍조 때문인지 지난해 총저축률은 34.6%로 전년의 36.2%에서 뚝 떨어졌다. 국민 대다수가 별다른 의식없이 소득수준을 넘어서는 과소비를 일삼고 있는 점이 무엇보다 심각한 증세라는 지적이다.
부유층의 과소비를 비난하기에 앞서 국민 모두가 자신이 구입하려는 상품의 필요성, 질, 가격 등을 꼼꼼히 따져가며 생활하는 자세를 갖출 때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것이다.<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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