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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낙하산의 오명을 쓰고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낙점되면서 금융계의 해묵은 '파행 인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사실 금융계의 최고경영자(CEO) 인사가 정치인과 정권 실세의 놀이터로 점철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 정권 출범부터 대형 지주회사 회장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인물들이 줄줄이 자리하면서 금융 인사는 인사권자인 금융위원회 위원장에게서 벗어나 정치인과 청와대의 '먹을거리'로 전락했다.
왜곡된 인사는 대형사뿐만 아니라 일반 공기업의 CEO 자리까지 정권 실세들의 유희도구가 되고 말았고 이 속에서 지주회사들의 지배구조까지 송두리째 흔들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전직 은행장은 "30년 넘게 금융 인사를 바라봤지만 현 정부의 인사처럼 파행으로 점철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권이 경기고 등 특정 학연에 얽매였다면 현 정부의 금융 인사는 지역ㆍ학연ㆍ정권 실세와의 끈 등 온갖 지저분한 내용물이 믹싱(합산)돼 이뤄졌다"며 "현 정권의 인사 정책에서 가장 잘못된 곳이 바로 금융 부문이었다"고 토로했다. 서울경제신문은 현 정부 들어 이뤄져온 금융 인사의 왜곡된 실태를 정리해보고 왜 이런 상황들이 생겼고, 대안은 없는지 시리즈로 분석해봤다.
◇실세들 놀이터…특정 지역 중심의 인사 고착화=이명박 정부 들어 금융계에 만들어진 골간은 지주회사 체제였다. 사실 선진국에서의 지주회사는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계열사 간의 유기적인 관계설정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지주회사는 도입 목적이 완전히 다르게 설정됐다. 지주회사가 정권 실세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변질됐다. 신한이나 하나 등은 지주회사 회장이 사실상의 오너로 군림하면서 이른바 '대리인' 문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정권 초기부터 불거졌다. 우리ㆍ신한ㆍ하나ㆍKB부터 덩치를 부쩍 키워온 신한까지 5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신한을 제외한 4개 지주의 회장이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인물로 채워졌고 이들은 한결같이 영남 인사 일색이었다. 이러다 보니 금융 인사의 힘을 지녀야 할 전직 금융위원장들은 인사권은 물론 주요 정책을 펼칠 때도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금융 정책의 수장이 지주회사 CEO에게 휘둘리는 기형적 모습이 지속된 것이다.
지주회사뿐 아니었다. 주요 공기업의 CEO 자리도 대통령의 측근 또는 측근에 연결된 인물들로 채워졌다. 사석에서 만난 대통령 측근인 한 전직 공기업 CEO는 공모로 이뤄졌던 다른 공기업 CEO의 인사와 관련해 "배경이 너무 궁금해 알아봤더니 대통령 주변에 줄을 댄 것을 확인했다"면서 "재주가 좋다"고 웃음을 지었다. CEO 인사가 철저하게 정권 실세들의 '그들만의 리그'로 점철됐음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다 보니 대형 금융회사의 CEO 인사가 날 때마다 후보에 오르는 인물들 또한 정권 실세와 연결된 영남 지역 인사들뿐이었다.
최근 신 전 은행연합회장이 농협지주회장에 낙점되면서 김석동 금융위원장(부산)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진해),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하동),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부산),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부산), 신동규 회장(거제),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합천) 등 모조리 부산ㆍ경남(PK)으로 채워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이런 상황은 정책당국과 감독당국에서도 되풀이됐다. 금융감독원은 부원장보 인사가 있을 때마다 지역적 배분을 생각한다. 금융위조차 1급 인사는 물론이고 핵심 자리인 금융정책국장 인사에서조차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지역적 해석이 먼저 나오는 실정이다.
◇지배구조의 균열 지속…신한 사태부터 농협까지=이런 상황은 지주회사 내부의 끊임없는 균열을 가져왔다. 신한 사태만 하더라도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 이백순 전 행장 등 3인 간의 권력 다툼이 표면화되면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사실 속내에는 지역적 갈등도 내재돼 있었다고 전직 신한 관계자는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의 경우 '지역적 한계' 때문에 신한 사태에 정면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의 고향이 전북 고창이기 때문에 섣불리 발언했다가는 동향(전북 군산)인 신 사장을 편든다는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정권 후반기 하나금융과 농협의 문제로 비화하고 말았다. 하나금융의 경우 김승유 회장이 3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한 것이 농축됐다고 하지만 내부에는 이 대통령과의 학연 등 너무나 깊은 관계가 오히려 독이 되고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시각이 많다. 다행히 김정태 회장이 들어서면서 안정 궤도를 되찾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지배구조 전반에 불확실성은 걷히지 않고 있다.
농협은 잘못된 인사 정책의 결정판이었다. 신충식 전 금융지주회장이 불과 석 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후진적 지배구조의 그림이 그려지고 말았다. 수많은 해석들이 오가고 있지만 여기에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과의 관계와 권력 실세들의 입김이 배경으로 있다는 점에 금융계 인사들 모두가 동의한다.
◇지주회장들의 독단…은행장과 갈등=파행 인사는 독단을 낳기 마련이다. 주요 CEO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견제장치는 사실상 실종됐다. 지난해 말부터는 이른바 '매트릭스' 체제를 놓고 각 금융회사의 갈등이 재연되기도 했다. 매트릭스 체제가 선진국에서는 해외에 나간 수많은 법인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조율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지주회사 회장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던 것도 지배구조에 대한 뿌리 깊은 문제의식에 줄기를 두고 있다. 심지어 우리금융의 경우에는 이팔성 회장과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매트릭스와 카드사 분사 등을 놓고 계속 대립하기도 했다.
여기에 다른 지주회사들도 지주회사 회장과 계열사 CEO 간의 대립이 끊이지를 않았다. 한 대형 지주회사 관계자는 "계열사의 핵심 간부들이 자기 CEO의 동정과 문제점들을 비공식 라인을 통해 회장에게 보고하고는 했다"며 "이를 통해 회장은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계열사 CEO의 목줄을 조이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털어 놓았다.
결국 현 정부 금융 인사의 파행은 단순히 인사 자체에만 문제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회사의 전략 전반에 무서운 독으로 퍼지게 됐음을 알 수 있다.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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