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단통법으로 불리는 도서정가제 확대 시행(21일)을 앞두고 가격통제 정책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왔다. 정가제 시행이 책 가격만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온라인 서점의 시장 비중 확대로 도서의 소비행태가 '가격'에 민감해진 상황에서 가격이 오르게 되면 출판시장을 더욱 위축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6일 '도서정가제와 소비자의 편익' 보고서에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비교해보면 도서정가제가 있을 때 도서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된다"며 "가격이 오를 경우 책 소비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반제의 제왕(번역본 기준)'의 각국별 가격을 비교하면 이 같은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도서정가제 미채택 국가인 미국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역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은 영국에서 반지의 제왕 가격은 미국의 140.8%였다.
반면 도서정가제를 채택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같은 책의 가격이 미국의 254.8%, 독일의 경우에는 403.1%에 달했다. 현재 도서정가제를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도 가격이 226.6%다. 정가제를 확대 시행하게 되는 경우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평균 할인율도 차이가 크다. 미국과 영국은 베스트셀러의 평균 할인율이 각각 43%, 42%에 달하지만 프랑스는 5%, 독일은 0%였다.
보고서는 또 도서정가제 확대 시행이 출판시장의 경쟁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이 수요에 민감할 경우 비효율적 출판유통업체가 자연스럽게 구조조정될 수 있지만 가격이 경직될 경우 이 같은 업체들이 시장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고처리의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발행한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舊刊)과 e-book에 대해서는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데 21일부터는 이 도서들도 정가에서 최대 15%만 할인이 가능해진다. 유통업체에서 재고처리가 어려워질 경우 이 손실이 출판사로 전가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조성익 KDI 연구위원은 "도서정가제 확대 시행이 소비자 편익을 충분히 고려한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며 "e-book은 적용방식을 더 고민하는 등 소비자들의 이해가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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