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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이 최근 한국GM 사무직 근로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과 달리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자 재계가 후폭풍에 떨고 있다. 그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던 판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과에 연동돼 있고 개인별로 지급액의 차이가 있는'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경총 관계자는 "고등법원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기준을 놓고 더 혼선을 빚게 됐다"며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직도 소송에 나설 수 있는 등 한마디로 기업 입장에서는 좌불안석 그 자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에 따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사무직 등 통상임금 소송 확대될 우려 높아져=서울고법 민사15부는 한국GM 사무직원 강모씨 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업적연봉을 포함해 모두 82억300만여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핵심은 1심 재판부에서는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2심에서 판결이 뒤바뀐 것이다. 한국GM은 2000~2002년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상여금을 직원들의 인사평가에 따라 변동되는 업적연봉으로 전환했다. 1심은 인사평가 등급에 따라 지급금액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보고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업적연봉도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근무성적과 상관없이 결정되고 최초 입사자에게도 지급된다"며 "연초에 정해진 업적연봉은 12개월로 나누어 지급될 뿐 그 액수가 달라지지 않고 그 해에는 고정돼 있으므로 정기성ㆍ일률성ㆍ고정성을 모두 갖춘 통상임금"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또 "강씨 등의 임금 항목 중 업적연봉, 조사연구조직관리수당, 가족수당 중 본인분, 귀성여비, 휴가비, 개인연금보혐료, 직장단체보혐료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생산직이 아니라 한국GM의 사무직들을 대상으로 한 판례라는 점에서 업적연봉을 채택하고 있는 다른 대기업의 사무직 근로자들이 통상임금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통상임금 부담 무려 38조5,000억원=통상임금 소송은 한국GM 개별 기업의 이슈가 아니다. 현대자동차ㆍ기아자동차ㆍ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등 국내의 대형 제조업체들에 모두 해당되는 사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상임금 소송에 따른 기업들의 우발채무액을 38조5,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6조~7조원, 현대중공업 2조원, 한국GM 1조원 등이다.
특히 맥쿼리증권의 경우 국내 자동차와 조선업체가 소송에서 패소해 통상임금을 재조정할 경우 일시적으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올해 예상 이익의 20% 수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3개사가 일시 환급해야 할 비용이 2조5,000억원을 웃돌고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 등 4개 조선업체도 5,610억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업적연봉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사무직들의 업적연봉까지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기업들의 부담을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사무직까지 가세해 통상임금 소송이 확대될 경우 기업들의 투자나 고용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이 필요하다=이에 대해 경총은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선이 하루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경총 고위 관계자는 "상여금뿐만 아니라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게 재계의 판단이나 재판부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오고 있다"며 "통상임금의 기준과 범위에 혼선이 없도록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통상임금을 놓고 법원 간 해석이 엇갈리는 등 이런 상황에서는 대법원이 전원 합의체로 판결해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특히 통상임금 소송 주체인 한국GM은 이번 고법 판결에 대해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GM은 "판결문이 오면 어떻게 할지를 검토하겠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정부는 다음달 중으로 마무리되는 임금제도개선위원회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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