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온통 사기판이다. 자본주의라는 용어 대신 슬그머니 시장체제라는 말을 쓰는 것에서 소비자 주권, 노동에 대한 찬양, 공공과 민간의 분리까지.' 명저 '풍요한 사회', '불확실성의 시대'를 남기고 지난 2006년 4월 98세로 타계한 미국 경제학자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저서인 '경제의 진실'에 담긴 내용은 암울하다. 거대한 사기구조가 자리잡고 있으니까. 한국의 독자에게는 유작(遺作)이지만 미국에서는 2004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The Economics of Innocent Fraud'. 정확하게 풀이하면 '결백한 것처럼 보이는 사기의 경제학'으로 옮길 수 있다. 왜 사기가 결백한 것처럼 보일까. 인식하지 못해서다. 자본주의를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자본의 지배력과 노동의 종속, 착취라는 부정적 의미를 희석시키자는 사기술이 깔려 있다. 기업이 내세우는 '소비자 주권' 개념 역시 마찬가지. 실제로는 인기 광고모델이 동원돼 소비자의 선택과 주권이 통제되고 있다. '건강한 노동'에 대한 찬양과 권고는 더욱 확실한 눈속임이다. 일하지 않고도 호화롭게 생활하는 한줌의 부자들은 사회의 부러움의 대상인 반면 대다수는 먹고 살기 위해 고통 속에 일하는 현실은 '노동 찬양'과는 거리가 멀다. 민간과 공공의 역할이 분리돼 있다는 점도 사기다. 국가가 결정해야 할 전쟁마저도 민간기업이 수행하고 민간기업의 이익에 따라 결정되는 판국이니까. 사기행각는 절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이유는 뭘까. 갤브레이스가 꼽은 이유는 사회적 통념과 회계부정. 역사상 최대규모의 회계부정 사건인 '엔론 사태' 이후 회계 투명성 규제가 강해졌지만 '사기 시스템'은 여전하다. 갤브레이스가 지목하는 사기구조의 핵심은 기업 권력. '시장'이라는 면책특권 아래 비대해지고 고삐 풀린 기업의 힘이 사기구조를 확대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권력이 주가 된 사기구조로 인한 폐해가 소비자를 넘어 국민경제와 정부, 종국에는 기업까지 돌아갈 것이라는 점. 이래서 암울하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더 암울해 보인다. 행태는 비슷하지만 사회에 대한 이익환원, 총수 개인의 지배구조로 따지만 한국의 기업권력은 미국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불과 100여쪽짜리, 그 것도 에세이 형식의 글이지만 임종을 앞둔 노학자의 세상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담겨 있는 책은 한국을 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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