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일대 위기를 맞았다. 세계 반도체 업계의 치킨게임이 지난 2006년 하반기부터 지속돼온데다 금융위기에 따른 수요위축마저 겹쳤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해외 경쟁업체들은 각국 정부의 두둑한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타도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은 추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황기에 해외 경쟁업체들과의 기술격차를 더 벌렸다. 국내 기업들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55%를 넘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치킨게임의 최종 승자는 한국 반도체 업체라는 게 기정사실이 됐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한국을 상대할 적수는 이제 없다”며 “불황을 거치면서 한국의 반도체는 신화를 뛰어 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불황 겪으면서 더욱 강해졌다=김현중 동양종금 연구원은 “치킨게임에서 확실히 이겼다”며 “해외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 자금을 대거 투입하지 않는 한 한국을 따라오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장 올 2ㆍ4분기 실적에서도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은 확연히 드러난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우 흑자로 전환되면서 영업이익률이 3.9%를 기록했다. 하이닉스도 적자폭을 크게 줄이면서 영업이익률이 -12.6%를 기록해 3ㆍ4분기부터 흑자전환이 유력시된다. 반면 경쟁업체인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엘피다는 영업이익률이 각각 -22.2%와 -58.3%로 나타났다. 기술력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지난해만 해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와 3~4위 업체 간에는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반도체협회 관계자는 “이번 불황을 거치면서 선두권과 중위권 업체 간 기술력 격차가 최소 1년 이상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 반도체 업계는 50~60나노를 넘어 30~40나노 양산채비를 마쳤으나 대만 등 해외 업계는 여전히 50~60나노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기술력 차이는 DDR2에 이어 차세대 제품으로 부상하는 DDR3에서 더욱 벌어진다. 5일 기준으로 DDR3(1GB 기준) 제품에 대한 인텔사의 인증현황을 보면 삼성전자는 50나노급에서 34개 제품, 하이닉스도 같은 급에서 31개 제품에 대해 인증을 받았다. 반면 마이크론과 엘피다는 두 회사를 다 합해도 인증 제품이 20여개에 불과하고 그것도 60나노급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엘피다, 대만의 난야 등 해외 경쟁업체들도 서서히 살아나고 이들 업체 간 합종연횡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불안요인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메모리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추격하려면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점유율 60%가 보인다=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합친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6년 44.8%에서 2007년 49%로 상승했다. 이어 2008년에는 49.6%를 기록했고 올 1ㆍ4분기에는 55.5%(삼성 34.1%, 하이닉스 21.4%)로 사상 처음으로 50%벽을 넘어섰다. 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이번 불황이 오히려 회사별로 경쟁력을 더욱 차별화했다”며 “이는 점유율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의 한 관계자는 “올 연간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 점유율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하이닉스가 20%대 중반 등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사의 점유율을 합치면 60%가 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60%대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우리 업체가 가격을 주도하며 시장을 리드하는 절대강자로 완벽하게 자리를 구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우리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용 D램 등 일부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대만도 중국과의 협력 여부가 변수이나 자체 능력으로는 우리를 따라 오기 힘들게 됐다”며 “차이완(대만과 중국의 결합) 등 불안요인이 있으나 치킨게임에서 (우리가) 완전히 이겼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 업체가 2006년부터 지속된 반도체 D램 공급과잉 국면에서도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기술력을 키워온 것이 주요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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