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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민족과 정보화
입력2003-03-06 00:00:00
수정
2003.03.06 00:00:00
오늘 아침 출근하는 길에 차량들의 색상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림잡아 50%이상은 흰색차량으로 보였다. 우리민족을 왜 백의민족이라 부르는지 새삼스레 느낄 수 있다. 혹자는 염색기술과 염료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백색을 선택한 결과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흰색차량을 선택하는 우리의 취향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인류역사를 한달로 줄여보면 정보사회의 등장은 단 12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단시일에 세계최고수준의 초고속인터넷 이용국가로 자리 매김한 우리나라에 정보화가 등장한 기간은 그 중 또 몇 초에 해당될지? 이러한 경이로운 발전을 분석하는 각종 이론적 근거들이 모두 다 옳은 듯 여겨지지만 혹시 흰색을 선호하는 우리 민족의 취향이 정보화에 강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정보는 백지 즉 여백만 있다면 열화 없이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컴퓨터 발명은 빠른 계산속도를 가능하게 했지만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기억매체의 발달과 이에 따른 대량 정보의 저장, 이를 복제하고 전달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형성이 없었다면 결코 정보사회는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유교적 관념 속에 철학적 상상의 파일들을 상대의 하얀 두루마리 위에 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문으로 풀어진 현대시를 표준화된 몇 줄의 시조로 담아내고 빈틈없이 그려진 서양화들을 영상 압축하여 여백 많은 한국화로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으로 대변되는 정보화의 발달과정은 서구의 전형적인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유즈넷과 뉴스그룹을 중심으로 보급되어 커뮤니티의 형성과 고유의 문화 축적과 컨텐츠 축적과 이의 상업화라는 수순과는 정반대로 상업화를 통해 가속화된 정보화 붐은 시장중심의 인터넷이라는 기형적인 상황을 낳았다.
결국 인터넷이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컨텐츠만으로 오염된 공간이라는 비판과 우려를 증대 시켰다.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시민참여의 주도적인 대안공간으로 여겨지던 인터넷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는 한동안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의 각종 이슈들과 이를 풀어 가는 과정에서 보여진 인터넷을 통한 연대와 커뮤니티의 형성은 이러한 비관들을 일시에 불식시켰다. 정보화는 흰색을 좋아하고 여백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의 전통 속에 이미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손연기(한국정보문화진흥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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