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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권민주주의
입력2003-04-27 00:00:00
수정
2003.04.27 00:00:00
일반적으로 나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는 나 자신보다 대학 친구 등 동료들이 더 잘아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이나 스페인 또는 프랑스의 전문가들이 향후 미국의 진로에 대해 좀 더 정확한 평가를 할 듯 싶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보았듯이 미국 군사기술의 우월성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악의 국가로 규정된 국가들은 두려움에 떨게 됐다.
이번 전쟁으로 발생한 모든 죽음은 그 하나 하나가 비극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번 전쟁의 희생자 규모는 유고슬라비아나 아프리카 내전에서 희생된 것에 비해 훨씬 적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확한 조준 포격으로 유전이나 인프라 등의 파괴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의 첨단 기술이 이라크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테러리스트의 게릴라전 위험을 봉쇄하지도 못한다. 더욱이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이 지난 1950년대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것처럼 중동 국가들도 이같은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도록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납세를 요구할 수도 없다.
현재 미국의 정치적 파워는 국내의 여러 가지 문제와는 대조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다. 특히 2003년 중반부터 2004년 중반까지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간 기준 3%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실질 GDP 성장률은 구직자나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에게는 충분치 않겠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에게는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는 경제적 난맥상을 겪고 있는 유럽연합이나 장기 침체에 시달려온 일본에게도 위안이 될 것으로 보이며,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금권(plutocratic) 민주주의에 병들고 있다. 백악관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상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현명하지 못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과 극빈자에 대한 사회 보장과 복지에서는 슬그머니 손을 뗀 채 부자들을 위한 대규모 감세에 골몰하고 있다.
왜 이 같은 레이건-부시 류(類)의 정책이 힘을 얻게 됐나. 200년 전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민주주의의 밑그림을 그릴 때 그들은 부유한 자들에 대한 폭도들의 강탈 위험에 대해 우려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21세기의 미국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이 반대 상황이 나타날 때의 위험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보수적 후보들에 대한 선거자금 기부 등을 통해 1,000명의 부자들은 10만명의 시민들보다 더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기업의 로비스트들은 특정 이익을 위한 법안 통과를 위해 정치인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원인은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을 위한 이익 추구를 부정하도록 유도한 공급 사이드 경제 정책에 있다. 다시 말해 공급 사이드 경제 정책은 기존의 부자가 더욱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부를 창조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호의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쟁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사실 총생산의 증가는 실질적으로 더 많은 실질 소득을 창출하며, 일반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가진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95~2000년 사이에 나타난 증시 버블은 효과적인 인센티브 제고 대신 부자들의 비위나 맞추는 금권 민주주의가 최고경영자의 능률이나 일반 대중에 대한 책임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요즘은 명문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사람들도 코스트를 낮춰 생산성을 올리는 것보다 기업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예상보다 빨리 벼락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레이건 행정부 당시 `부두(voodoo) 이코노믹스`라고 불렸던 우파적 경향의 공급 사이드 정책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여부에 대한 검증을 받고 있다.
지난 1980년대 같은 회사 종업원 평균 임금의 40배였던 최고경영자(CEO)들의 보수는 최근 400배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생산성 증가는 10배, 아니 1.01배조차 되지 않는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현재 상태에 대한 평결을 내린다면 금권 민주주의가 대다수를 위한 복지를 후퇴시켰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한 금권 민주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파이 자체를 축소시킨다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규모 감세로 발생할 미국의 과도한 소비 증대는 외국 수출업체들에게 미국 시장을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 것이다. 또한 해외 투자가들은 더 많은 미국의 자산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반면 출산율의 급감으로 새로운 노동력은 줄어드는 반면 은퇴 인구의 수는 늘어날 2020년이 되면 미 베이붐 세대의 노후 수입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문제이지 해외 국민의 문제는 아니다.
<폴 새뮤얼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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