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기의 제1국은 박영훈이 이겼다. 내용면에서는 구리가 압도한 바둑이었다. 그러나 바둑이라는 경기는 최종적으로 집의 수효를 비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므로 집이 적은 구리가 패하였다. 바둑에서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과정을 아무리 훤칠하게 압도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패하면 그 모든 과정은 철저히 무시된다. 그러한 양상은 구리가 박영훈과 겨룬 최초의 바둑에서도 똑같았다. 2년 반 전에 농심배에서 구리가 패했지만 내용면에서는 구리가 박영훈을 압도했다. 신인왕전 3번기 제1국이 끝난 직후 구리는 중국기원의 감독인 마샤오춘에게 훈계를 들었다. “기분을 내지 말아. 기분을 내는 것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야. 프로는 최후의 일각까지 냉정하고 긴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영훈은 너보다 고수라고 볼 수 있다.” 제2국은 구리의 흑번. 구리는 2연성을 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소목을 애용했다. 소목의 다양성을 즐겼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그는 화점을 실험하고 있다. 화점의 역동성과 위풍을 살리고 싶어졌다. 박영훈이 6으로 협공했을 때 구리가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최근의 유행형인 참고도의 흑1이었다. 그것이면 흑9까지가 가장 빈번한 절충인데 어쩐지 나눠먹기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화끈하게 힘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을까. 구리는 수순을 비틀어 보기로 했다. 실전보의 흑7이 그것. 부분적으로는 백8과 교환되어 손해지만 좌상귀 방면의 전투에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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