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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요즘 유독 화장실을 자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신성택(38ㆍ가명)씨는 출근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화장실을 찾아 소변을 볼 뿐만 아니라 퇴근해서 밤에 잠을 자다가도 소변이 마려워 여러 차례 깨기를 반복해 수면 부족으로 항상 피곤함을 느낀다.
주변에서는 이런 신씨에게 '방광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지만 신씨는 소변을 자주 보는 일이 무슨 병이라고 병원까지 가야 하나 하며 무시해왔다. 그러다 소변에서 피가 나와 결국 병원을 찾아 검사한 결과 방광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이렇게 신씨처럼 갑자기 소변이 마려우면서 참을 수 없거나 다른 사람보다 화장실을 더 자주 간다면 과민성 방광을 의심해봐야 하며 방광에 숨은 암이나 전립선암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인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전립선과 방광에 대한 기본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제요실금학회에 의하면 과민성 방광은 '절박성 요실금,' 즉 소변이 급하고 요실금이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요절박, 즉 소변이 마려우면 참기 어려운 증상군으로 정의하고 있다.
과민성 방광은 사회적ㆍ심리적ㆍ직업적ㆍ가사적ㆍ신체적ㆍ성적 삶의 질의 모든 척도 면에서 상당히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단순한 생활의 불편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쯤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남성 10명 중 1명이 과민성 방광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40대 남성의 경우 12.9%인 반면에 60대 이상은 23.7%에 달해 연령이 높을수록 유병률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민성 방광 환자는 일반인 대비 우울증이나 업무 능률 저하는 물론 실직률이 2~3배 높고 요로감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노인의 경우 요절박으로 서둘러서 화장실에 가다가 낙상사고를 당할 확률이 30%로 일반인의 2배나 높으며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당뇨보다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밤에 취침 중 잦은 소변으로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를 유발하며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게 해 삶의 질이 떨어지고 건강이 나빠지기도 한다.
결국 전체적으로 삶을 불편하게 하고 활력과 생산성을 저하시켜 간접적이지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비용이 들게 되며 이런 증상은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민성 방광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민성 방광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과민성 방광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으로는 크게 방광요도질환과 신경질환, 전신질환, 기능성 배뇨장애, 약물 부작용 등을 들 수 있다. 방광요도질환에는 남녀 모두에서 요로감염, 요로폐색, 방광 수축력 저하, 방광암, 방광결석, 간질성 방광염 등이 있으며 여성은 에스트로겐 결핍, 괄약근의 약화, 남성은 전립선비대가 대표적이다.
여성은 자궁이나 대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경우나 출산 시 방광 주위의 신경이 손상됐을 때 과민성 방광이 생길 수 있는데 신경질환은 뇌졸중이나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경추부 혹은 요추부의 협착증, 추간판 탈출증, 척수 손상, 당뇨병성 신경병증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전신질환과 관련해서는 울혈성 심부전, 당뇨, 수면 무호흡증 등이 있으며 기능성 배뇨장애에는 과다한 카페인과 술 섭취, 다음증, 장 기능 저하, 변비, 퇴행성 관절질환이나 골다공증으로 인한 이동 능력의 저하, 만성 불안 등의 정신질환 등이 원인이 될 수 있고 약물 부작용은 이뇨제ㆍ항콜린제ㆍ마약류ㆍ고혈압약 등이 있다.
명순철 중앙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과민성 방광은 개인 건강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흔한 질환이라고 소홀히 여기지 말고 병원을 찾아 기본적으로 요 검사와 배뇨 후 잔뇨량 측정, 배뇨일지, 삶의 질에 관한 설문지를 해보는 것이 좋다"며 "신경질환이 있거나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진단이 모호한 경우나 침습적인 치료를 계획하고 있는 경우에는 기본검사 외에 방광경검사와 요세포 검사 등을 추가로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민성 방광의 일차적 치료 방법으로는 생활습관의 교정, 골반저운동(케겔운동), 방광훈련, 비침습적 약물치료가 있다.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과민성 방광 환자 1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약물치료 전 환자들의 하루 평균 배뇨 회수는 11.7회, 절박뇨 회수는 8.2회, 절박성 요실금 회수는 2.2회였지만 치료 후에는 각각 8.3회, 2.2회, 0.1회로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약물의 효과는 복용 후 2주 안에 나타나지만 과민성 방광 증상을 개선하고 만족스러운 치료 효과를 얻으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행동치료에는 방광훈련, 골반근육 운동, 식이조절, 체중 감량 등과 같은 생활습관 개선 등이 포함된다.
약물과 행동 치료 요법의 병행으로도 치료 효과가 불만족스러우면 신경조정술 또는 수술 등 2차 치료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과민성 방광을 관리하려면 무엇보다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은 오후6시 이전까지 신체활동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오후6시 이후에는 수분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좋으며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하는 녹차ㆍ카페인ㆍ탄산음료 등의 섭취는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변비 등이 있으면 배에 힘을 주게 되고 이때 방광에 압력이 증가돼 절박뇨ㆍ빈뇨 등의 증상이 유발 또는 악화될 수 있으므로 섬유질과 수분 섭취, 꾸준한 운동을 통해 장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비만인 사람이 체중을 줄이면 방광이 받는 압력이 줄어 과민성 방광 증상과 복압성 요실금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니코틴은 방광을 자극하고 흡연으로 인한 기침 역시 요실금을 유발하므로 금연을 해야 한다.
명 교수는 "많은 환자가 수치심 때문에 병원을 찾기 전에 민간요법ㆍ식이요법 등으로 병을 다스리려 하는데 정확한 근거에 기초하지 않은 치료를 하면 방광 증상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며 "같은 증상이라도 다른 질환인 경우도 많고 그중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도 있을 수 있으므로 적어도 숨은 중증 질환이 있는지를 비뇨기과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한 검사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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