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32부터 다시 본다. 백32로는 먼저 36의 자리에 헤딩하여 흑을 무겁게 만들면서 실전보의 흑33으로 붙이는 수단을 방지해 놓는 것이 행마의 요령이다. 아마추어도 아는 그 행마를 다카오 신지가 따르지 않은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참고도1의 흑4로 크게 씌워 우변의 백진을 삭감하는 이 수단을 다카오는 꺼린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진행된다고 해서 백이 꼭 나빠진다고 볼 수는 없다. 다카오는 우변에 큼지막한 확정지를 만들면 집으로 앞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는 흐름이 괜찮으니 가장 부드러운 방법으로 이기자고 작심을 했던 것 같다. 장쉬는 상대방의 마음을 거울속같이 읽고 있었다. 그는 우변을 백이 마음껏 키우라고 내주기로 했다. 구태여 그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 대신 좌변에 거대한 흑진을 얽어 승부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한 그의 작전은 흑47로 그냥 지킨 수순에 잘 나타난다. 원래 흑47로는 참고도2의 흑1에(그곳은 정말 기분좋은 급소자리에 해당한다) 하나 짚어 백2로 굴복시켜 놓고서 비로소 3에 지키는 것이 프로의 제일감이다. 그런데 그렇게 진행되면 바둑은 백이 A로 침입하는 식으로 전개될 것이 뻔하다. 장쉬는 일부러 백에게 48의 자리를 양보한 것이었다. 백52는 공격의 급소. 우하귀의 흑대마가 무사히 수습되느냐가 포인트가 되었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