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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말리는 인사검증, 그 복잡다단한 퍼즐

사정기관 동원 재산·여자 등 사생활 이잡듯 뒤져<br>유력 후보 하루아침에 바뀌고 의외 인물 행운도<br>항목 200여개… 자신도 몰랐던 자기모습에 우울증 앓기도

서울 태평로에서 바라본 청와대에 안개가 잔뜩 끼여 있다. 인사검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을 투영하는 듯하다. /서울경제DB




결혼식 축의금서 음주운전 여부까지 따져 겉으론 자율, 속으론 윗선 입김따라 움직여
인사 실기 잇따라… 장관에 재량권 더 줘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4박5일 일정으로 휴가를 떠났다. 공기업 인사가 너무 늦어진다는 말이 많아서일까. 쉬러 가는 박 대통령의 손에는 공공기관장 인사자료와 관련 파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주 박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면 오랫동안 막혀 있던 공기업 인사 등이 하나씩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공기업 인사는 이미 늦어버렸다. 정무수석은 두 달 넘게 공석이고 수많은 공기업과 민간기업들이 수장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왜 이렇게 인사가 늦어질까. 답은 인사검증에 있다. 공공기관장이나 임원에 적합한지를 보는 청와대의 인사검증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일 "기관별로 일부 기관은 해당 부처 장관이 3명, 청와대가 3명을 추천해 총 6명을 대상으로 꼼꼼히 검증하고 있다"며 "한번 자리를 맡기면 믿고 쓰는 박 대통령의 특성상 인사검증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사검증은 빡빡하게 이뤄진다. 정부 부처 국장이었던 A씨는 올해 1급 인사 대상에 올랐다가 청와대의 검증에서 낙마해 옷을 벗었다. 국장인 고위공무원단에 들어갈 때만 해도 아무 얘기가 없다가 이번에 걸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본인도 무슨 이유인지 정확하게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국책금융기관 임원이었던 B씨도 최근 계열사행이 좌절돼 회사를 나왔다. 청와대에서 가족 문제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현직 정부 고위관계자인 C씨도 한동안 인사 때마다 속칭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십수년 전에 걸린 음주운전 경력이 검증 때 발목을 잡았다.

금융감독 당국 고위인사인 D씨도 최종적으로 임원이 됐지만 청와대 검증에서 탈락했다는 말 때문에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기관장 추천 때만 해도 임원후보에 들어가 있었는데 막판에 뒤집혔다는 말이 많았다.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문제 등으로 고위직이나 기관장 문턱까지 갔다가 이를 넘지 못한 경우는 허다하다. 반대로 전 국책은행장 E씨처럼 당초 낙점된 후보가 인사검증에서 걸리면서 의도하지 않게 연임하는 행운(?)을 누린 경우도 있다.

이는 인사검증에서 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인사검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진행하는데 국가정보원과 국세청 등 사정기관의 정보를 모두 활용한다. 부동산은 물론 여자 문제, 병역까지 사생활을 이 잡듯 뒤진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인사 때면 각종 투서가 난무한다.

투서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이에 대한 확인작업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을 했던 한 인사는 "일부 부처의 경우 투서가 수백장씩 밀려와 이를 확인하는 데만도 며칠씩 걸린다"며 "검증하는 사람인지, 검사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헷갈릴 때가 많다"고 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과거 정권에서 이뤄진 최고경영자(CEO) 추천과정에서는 특정 후보의 여자 문제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돌아 청와대가 직접 검증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인사검증은 복잡한 퍼즐을 하나씩 맞추는 과정이다. 전문성과 평판은 기본이고 투기 같은 도덕적 문제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VIP, 즉 대통령의 복심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언론사 논설ㆍ해설실장 간담회에서 인사 기준에 대해 "우선 사람을 보고, 그것을 감당할 능력과 전문성이 있느냐(를 본다)"라고 했다. 인사검증의 첫번째 퍼즐은 사람과 전문성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 들어 당이나 정치권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줄어들고 전문성을 앞세우는 것은 좋다면서도 적정 수준의 인사권은 장관에게 실질적으로 배분해 인사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사는 적절한 시점이 중요한 탓이다.



◇아들ㆍ딸 문제까지 찾아내…검증 후 우울증 앓기도=국책금융기관 임원이었던 F씨는 최근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가족문제가 걸려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실제로 청와대 인사검증에서는 아들과 딸 문제까지 샅샅이 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가 병역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식들의 병역 현황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찾아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각종 비리의혹은 기본이고 본인과 자녀의 병역 문제, 이중국적, 증여세 탈루, 불법ㆍ편법 상속 여부, 결혼식 등에서 부당하게 축의금을 받았는지도 따진다. 이제는 기본이 된 논문표절과 성희롱 문제, 과거 음주운전 여부까지 안 나오는 게 없다.

인사검증 때 받는 검증서 항목도 100~200여개에 달한다. 상당수 검증 대상자들은 검증서를 쓰면서 본인이 놀랄 정도다. 인사검증을 위한 기초 질의사항이 그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검증을 받은 한 고위 당국자는 "과거 과태료나 세금 체납 사항, 병역문제, 부동산 거래내역 등 나도 잊고 있거나 몰랐던 부분이 모두 드러나 놀란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겉으로는 자율...속으로는 위 눈치 보기=현재 공기업의 기관장과 감사, 비상임이사는 해당 기관에서 임원추천위원회를 열고 임추위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후보를 보고하면 이를 심의 의결한 뒤 해당 부처 장관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로 돼 있다. 장관이 임명하는 경우도 있고 준정부기관은 감사만 이같은 절차를 따른다. 이 과정이 공식적인 수순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이 과정에서 수시로 개입한다는 게 정설이다. 중간중간에 청와대는 인사검증 작업을 하고 이를 교감한다는 의미다.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의 입김이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공운위에서 직접 해당 임추위에 특정인을 지목하거나 반대로 원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공운위가 계속 반대하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사전에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특정 인물에 표시해 임원추천위에 내리는 방법이 가장 많다"며 "그러나 노동조합이 세거나 통제가 잘 안 되는 공공기관은 임추위에 올린 인물을 공운위가 계속 거부하면서 원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이어간다"고 했다.

산은금융지주나 기업은행처럼 개별법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곳들은 해당 부처와 청와대에서 각각 후보를 추천해 이를 청와대 인사위원회에서 검증한다. 우리금융그룹처럼 중요도가 높은 곳도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거친다. 허태열 비서실장이 위원장인 청와대 인사위원회는 후보자에 대해 까다로운 평판조회 작업을 한다. 장관이 3명, 청와대에서 3명을 내고 이를 검증한다는 얘기는 이런 기관들에 주로 집중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기하는 인사검증=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사검증을 촘촘히 하는 것은 좋지만 인사를 실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을 까다롭게 하는 것은 좋지만 인사가 너무 늦어지다 보니 공기업 경영공백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인사검증에 충실하는 것도 좋지만 인사는 때가 있는 법"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공공기관 인사를 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라고 했다.

◇장관에 재량권 더 줘야=이 때문에 청와대가 일일이 인사검증에 나서기보다 해당 부처 장관에 인사 재량권을 더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의 정부 부처 장관들은 말이 장관이지 실제 산하 기관들에 대한 인사권이 전혀 없다시피 한 게 현실이다. 박 대통령도 대선 때 "장관들에게 인사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부 금융공기업에서 관치논란 등 잡음이 일자 공기업 인사 전체가 중단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형 공기업이나 주요 공공기관장의 인선은 청와대가 철저히 인사검증을 하고 앉힐 사람을 고르는 게 맞지만 작은 계열사나 임원 등은 해당 부처 장관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인사검증에 따른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적시에 인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인사검증을 모두 청와대에서 하다보니 이에 따른 부담과 향후 인사실패에 따른 비난도 청와대가 지게 된다"며 "책임장관제를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인사검증과 그에 따른 인사권을 장관들에게 실질적으로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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