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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GQ를 말한다] <4> '공공의 적' 포퓰리즘

인기영합만 해선 선진국 진입 불가능<br>성장에 쏟아부어야 할 돈 복지에 '펑펑'<br>소득 1만~1만5,000弗 중진국서 기승<br>한국 '대처리즘-페로니즘' 선택 기로에



“지금 일본 사회는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려 있다. 가죽과 뼈만 남기고 군살은 모두 빼겠다.” 지난 89년 일본은행 수장에 오른 미에노 야시스 전 총재의 취임 일성이었다. 부동산 값 급등이 계층 갈등으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미에노 총재는 불과 15개월 사이 정책금리를 3.5%포인트나 올리는 등 부동산 거품을 터뜨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일약 ‘서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강도 높은 부동산대책의 결과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거품 붕괴 과정에서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의 파산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붕괴는 아직도 일본 소비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한 나라의 경제를 얼마나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중진국의 유령, 포퓰리즘=포퓰리즘은 통상 1인당 국민소득이 1만~1만5,000달러인 국가에서 기승을 부린다. 국민 경제의 성장으로 분배 여력도 생기고 형식 민주주의도 틀이 잡히면서 사회 각계의 요구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성장보다 분배가 강조되면서 복지지출 증가→재정압박→정부지출 축소→실업률 상승→임금인상 요구 및 노사분규→성장률 둔화 등을 거친 게 대다수 국가의 경험이다. 이때 국가 지도자와 정치권이 사회 갈등 해결과 집단 이기주의 대처를 위해 국민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느냐가 선진국 진입이냐, 중진국에서 정체냐를 판가름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성공 사례인 반면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대통령은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20세기 초 세계 5대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페론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수차례 국가 부도 위기를 맞으면서 만년 중진국으로 추락했다. 페론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조건 개선, 농축산물 가격 강제 인하, 철도 국유화 및 미국과의 대립정책 등으로 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제조업과 농축산업 생산성 하락, 외국인 투자 중단 등을 초래함으로써 국가 경제는 거덜났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선진국으로 기준할 때 지난 100년간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 두 나라뿐”이라며 “반개방ㆍ반세계화 정서, 반기업 정서, 반엘리트 정서, 하향평균화 의식이 특징인 포퓰리즘으로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0년 전 한국의 외환위기도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무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시장개방에 따른 외화 유출 사태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경제를 과도 포장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대 피해자는 일반 서민과 국가 경제=“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도시 파괴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첫째가 폭격이고 두번째는 부동산 임대료 규제라는 말이 있다. 당장 집 없는 서민들은 월세가 싸져서 환영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이 줄면서 서민들의 집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도시 경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 교수의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설명이다. 가령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모피코트에 중과세를 매기면 부유층은 수입 보석으로 구매욕구를 충족시키지만 모피공장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겨 더욱 심각한 빈부 격차가 야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 서민들에게 수혜가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대중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되고 사회와 경제를 붕괴시키는 독소가 바로 포퓰리즘의 정체라는 얘기다. 참여정부의 복지나 노동 정책, 국토균형발전 어젠다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소외된 비정규직이나 빈곤층, 지방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부 시장경제에 거스르는 조치 때문에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 교수는 “분배를 더 중시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된 예는 없다”며 “특히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한 중진국은 더 그렇다”고 말했다. 올 들어 발표된 임산부에 대한 초음파와 기형검사 무료 지원, ‘반값 골프장’이나 자영업자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도 구체적인 재원마련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선을 겨냥한 인기 영합정책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대선 앞두고 포퓰리즘 남발 우려=특히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성장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치르게 된 대통령 선거가 포퓰리즘의 장으로 변질될 경우 자칫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꺾어놓는 치명적인 경제의 덫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성장에 투입돼야 할 재원이 분배ㆍ복지정책으로만 전환될 경우 재정부담과 국민 실질소득 감소 등으로 인해 성장의 기회가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 본부장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경기 양극화 문제를 부풀려 경제실정에 맞지 않는 분배정책을 강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서울경제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8월1일자 참조) 경제전문가 10명 가운데 7명은 차기 정부가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반인은 분배 위주의 정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이 장기적인 국가 비전과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할 경우 한국 경제는 선진국 진입의 기회를 놓치고 ‘만년 중진국’에 머물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얼마 전 열린 선진화포럼 토론회에서 “인기 영합적 경제정책은 경제성과 실현 가능성이 떨어져 결코 지속될 수 없다”며 “한 시대의 박수갈채의 대가로 혹독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인기놀음’이 아닌 국가와 국민 전체가 오랜 기간 배부르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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