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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분기 성장률이 이렇게까지 낮아질 것이라고는 저희들도 생각 못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0.4%(전 분기 대비)에 그친 지난 분기 경제 성적표(추정)를 말하며 밝힌 심정이다. 2·4분기 추정 성장률을 전해 들은 경제 전문가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성장 낙폭을 키운 수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발 내수 타격으로 1·4분기(0.8%)보다 높아진 못하더라도 0.5% 정도는 될 줄 알았다는 것이다.
2·4분기 성장률 쇼크의 복병은 가뭄이었다. 장민 한은 조사국장은 9일 기자 브리핑에서 "올해 강우량이 평년의 60%도 안 됐다"며 "작황 부진으로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고 이는 소비를 감소시키는 직접 효과를 낸다"고 평가했다. 그는 "농산물 수확량이 줄면서 물동량까지 줄어들었다"며 "연간 기준으로 가뭄이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0.1%포인트 낮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 전문가들도 6개월 연속 뒷걸음질친 수출과 메르스발 내수 타격을 성장제약 요인으로 봤지만 가뭄 변수를 그다지 비중 있게 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2·4분기 성장률이 예상 외로 큰 폭으로 떨어지자 한은도 연간 2%대 성장 전망 대열에 합류했다. 이 총재는 "2·4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낮아지면서 올 성장률 전망치를 4월의 3.1%에서 2.8%로 낮췄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22조원에 이르는 정부의 '슈퍼 추경 패키지' 효과도 포함돼 있다. 추경을 해도 올 우리 경제가 2%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시각과는 다른 것이다. 이날 최 경제부총리는 8차 무역투자진흥회의 합동 브리핑에서 "추경이 제때 집행되면 올 3%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심은 우리 경제의 진로. 한은은 성장률을 갉아먹은 가뭄과 메르스는 일시적 요인이어서 하반기에는 완만한 성장세를 탈 것이라는 낙관론을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하방 리스크가 많다는 점도 인정했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3%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올해는 메르스 등 일시충격에 의한 것으로 일각에서 나오는 2%대 성장기 진입 걱정은 기우"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총재는 "그리스, 중국, 미국 금리인상 시점, 메르스 조기 진정 여부 등 워낙 리스크 요인이 많다"며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그리스와 경제 밀착도가 낮기 때문에 현 사태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지만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가 현실화되면 우리 경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중국 주식이 폭락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 증시는 버블 논란이 있는 중국과 다르다"면서도 "한중 경제의 상호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 증시 폭락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걱정했다.
이에 한은은 지난달 금통위 때 슬쩍 내보였던 '매파' 기색을 감추고 통화정책 스탠스를 중립, 내지는 다소 비둘기파적으로 돌렸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상의 '금융안정에 더욱 유의하겠다'는 문구 중 '더욱'을 삭제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 사태는 힘들더라도 구조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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