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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청문회 유감
입력1999-08-30 00:00:00
수정
1999.08.30 00:00:00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지난 주 항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호랑이 무늬 반코트를 물증으로 벌어졌던 「옷 로비」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이 말을 떠올렸다. 청문회라는 형식이 진상을 규명했어야 마땅한 데 진실은 안개 속에 사라져 버렸다. 이건 아무래도 형식의 운영을 잘못한 데 있는 것 같다.청문회의 목적은 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진실을 밝히는 데 있다. 객관적 사실이야 조사기관이 맡을 일이고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청문회의 몫이다. 사실과 진실은 일치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권력이 배경으로 깔린 사건에서는 사실은 드러나도 진실은 은폐되는 수가 많다.
전직 장관이었던 아무개씨가 뇌물사건으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기업과 산하기관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것이 검찰의 기소사유였다. 그런데 그 돈은 당시 여당쪽을 지원한 정치자금이었다. 검찰수사에서 피의자인 아무개씨는 사실자체를 시인하고 그 돈의 행방을 진술하려고 했다.
그러나 검찰조사는 수뢰사실 확인만으로 끝났다. 정치무대의 부패현상이라는 엄청난 진실은 은폐되고만 것이다. 정치적으로 거물급 속죄양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의 옷 청문회도 대중의, 특히 4·50대 여성층의 관극심리를 일부 충족시켜준 외에 새로운 사실의 확인도 진상접근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끝났다. 진실이라는 것은 관련자의 심리와 사실의 정황적 세부상황이 있어야 판단의 기초가 되는 것인데 그것이 나올 만하면 「시간이 다 되서 질문 끝」이었다.
횃불선교회에서 최순영 신동아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와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의 부인 배정숙씨가 상당시간 만난 대목의 정황은 매우 중요한 데 양쪽 증인의 증언 시도가 모두 잘려 버렸다. 자기입장 전달에 유리하게 말할 것은 뻔하겠지만 두 사람이 만나 말한 내용과 정황을 상세하게 청문했다면 보다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를 잡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들 인치의 시대가 가고 법치의 시대가 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 그래서 그런 제도와 판을 벌여 놓고도 있다. 그런데 예단과 흥분과 요식행위에만 매달려 있다.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기술이 없다. 그나마 공직자들의 일그러진 안방세상 공개도 그림자만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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