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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과 금메달

제35회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실험 시험장인 그리스 아테네대학의 실험실동. 갑자기 조그만 토론회가 열렸다. 출전학생 4명을 인솔하고 온 우리나라 화학과 교수 5명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쏟아냈다. 입석 토론회가 졸지에 시작된 것은 다음날 치러질 실험시험에 앞서 각국 인솔교수 및 교사들이 실험 장비 및 환경을 테스트하고 검사하기 위해 실험실동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조금 많은 1만1,000달러, 하지만 관광과 농업, 해운이 주력 산업이고 인구도 1,100만명에 불과한 그리스의 한 대학 실험실의 모습에 교수들은 순간 본연의 임무 보다 부러움과 불만을 먼저 터뜨렸다. 한 교수는 250여명이 한번에 실험할 수 있는 시설이 또다른 건물에도 있는지 확인한다며 자리를 잠시 비우기도 했다. 또 다른 교수는 “이런 실험실만 있어서도 지난 여름 학생들과 그 고생을 안 했을 것”이라며 흥분했다. 그 교수의 설명으론 우리나라 대학 실험실은 규모면에선 물론이고 특히 시설면에서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화학약품을 취급하는 화학 실험실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기 및 냉난방 시설. 우리나라 실험실이 주로 건물의 꼭데기층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제대로 된 배기시설은 물론 냉방장치 마저 없다 보니 지혜(?)를 모아 환기조건이 가장 좋은 건물 최고층에 실험실을 주로 설치한다는 것이다. 즉석 토론회는 그날 호텔 로비에서도 계속됐다. 오는 2006년 국내에서 개최될 화학올림피아드 실험 시험장 문제가 당연히 화두가 됐다. 방법이 없었다. 결국 한 교수의 아이디어가 대충의 결말이 돼버렸다. `분산 시험`. 비교적 가까이에 있으면서 시설이 좋은 2~3개 대학을 골라 실험시험을 분산실시하자는 아이디어는 궁색하기는 했지만 그런데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소 씁쓸하게 보였던 교수들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래도 성적은 실험실 시설순이 아니니 다행”이라고 누군가 던진 말때문이었다. 마치 이 위안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 이번 대회에서도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이 순위권에서 밀려나고 중국, 태국, 이란, 인도, 우리나라가 선두권을 지켰다. <조충제기자(정보과학부) c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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