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 같은 정보기술(IT) 업체들에 매년 하반기는 전통적인 성수기로 통한다. 특히 연말에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겹쳐 기대가 더 크다.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주력 제품의 판매가 늘어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사례가 많다. 더구나 올해는 원·달러 환율도 수출기업에 유리해 환차손에 따른 영업이익 확대가 예상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영환경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온도는 다르다. 오는 4·4분기에도 영업이익이 늘어나기는커녕 상반기보다 못한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큰 악재는 중국 내수 경기 악화다. 중국 정부가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단기간에 경기가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갑이 얇아진 중국인들은 값비싼 한국산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이 10월 이후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주요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줄줄이 낮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4·4분기 영업이익이 3·4분기 전망치와 비슷한 6조원대 중후반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년 만에 연매출 200조원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LG전자 역시 4·4분 영업이익이 3,000억원 안팎에 그쳐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성장성이 낮은 사업부를 대상으로 인력 조정에 들어가는 등 체질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전자·LG전자 모두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에서 드라마틱한 실적 상승을 내기는 어렵다고 보고 기업 간 거래(B2B) 등에 투자를 늘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연말 인사에 이런 사업 방향이 담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 업계 역시 중국·러시아 등 신흥국 경기 부진에 따라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 불안한 상황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하고 있어 실적에는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이 8월 19.3%(현대차 9.1%, 기아차 10.2%)로 지난해보다 3.6%포인트 늘었다. 서유럽 15개국에서의 판매량도 전년 대비 15.3%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시장에서는 '아반떼' '스포티지' 'K5' 등 주요 신차의 초기 반응이 좋고 노조가 대규모 파업에 나서지 않고 있는 점도 유리한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올해 영업익이 각각 3조8,000억원, 1조4,000억원 안팎을 기록해 전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석유화학 업계는 지난해 실적부진이 4·4분기에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케미칼 등이 상반기 깜짝 실적을 내며 선방했지만 지난 7월부터 계속된 유가 하락세가 석유화학제품 가격까지 끌어내릴 수 있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7월 내부 임직원에게 "실적 호조에 대해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더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차세대 성장동력이 부족해 테레프탈산(PTA) 같은 범용 화학제품을 중심으로 업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조(兆) 단위의 기록적 영업적자를 냈던 조선 업계는 4·4분기 이후 점진적인 반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임원의 20~30%를 감원하고 충당금을 쌓아 우발 손실을 미리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저유가·저가수주 같은 근본적 원인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 영업흑자와 적자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성적표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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