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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그룹,어떤 회사인가/“특수강업체 대명사”…작년매출 1조5천억

◎89년 미 알텍­가아틀라스사 등 인수후 자금난삼미그룹은 한때 세계 최고의 특수강업체를 꿈꾸며 재계 17위까지 오르기도 했던 특수강 업체의 대명사였다. 96년말 현재 6개 계열사에 1조5천80억원(삼미특수강 봉강·강관공장 제외)의 매출을 올렸으며 자산기준으로 재계 26위의 대기업이다. 삼미는 지난 54년 김두식씨(80년 작고)가 대일기업이란 회사를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김 전 회장은 67년 삼양특강(삼미특수강의 전신)을 인수한 후 창원기계공업단지에 특수강 생산공장인 창원제강소를 건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특수강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3공때는 삼미특수강이 방위산업업체로 지정돼 당시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의 지원을 받아 고속 성장가도를 달렸다. 삼미는 10층빌딩이 고작이던 60년대에 서울 관철동에 31층짜리 삼일빌딩을 지어 재계를 놀라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전 회장은 창업후 해운과 목재를 주력업종으로 꼽았으나 70년부터 특수강과 함께 조선·금속·전산·유통업과 프로야구 등으로 손을 뻗치며 사업을 다각화하다 80년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 뒤를 이어 30대 총수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장남인 김현철씨가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삼미는 한차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80년대초 세계경기호조에 따라 해운시황을 낙관, 주력중 하나였던 삼미해운의 선복량을 과도하게 늘리는 등 해운업을 확장했으나 2차 오일쇼크로 세계경기가 위축됐던 것. 삼미는 83년부터 삼미빌딩을 매각하는 등 자구노력을 전개, 회생기반을 마련했다. 감량경영과 특수강 경기호전으로 다시 재기에 나선 삼미는 한때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매출액 순위 17위까지 뛰어 올랐다. 80년대 중반 자동차와 기계공업의 급성장으로 특수강수요가 부쩍 늘어난데다 때마침 3저현상까지 겹쳐 삼미는 부흥하는듯 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특수강업체로의 도약이라는 목표에 따라 89년 미국 알텍사와 캐나다 아틀라스사 등 해외특수강 공장을 인수하는 등 무리수를 두면서 삼미는 다시 자금난에 봉착했다. 더구나 그 당시 불어닥친 북미지역의 특수강 경기불황으로 삼미아틀라스와 삼미알텍은 4년연속 적자에 허덕였으며 그룹도 증자자금조달과 부채누적등으로 휘청거렸다. 삼미는 서울 방배동사옥과 부산 유나백화점, 부산 학장동 야적장, 인천 만석동부지, 진주공장부지 등을 처분하고 94년 베어링생산업체인 삼미정공을 한화에 매각했으며 95년에는 왕십리민자역사 개발사업권을 청구그룹에 넘겼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95년말 16년간 그룹을 이끌어오던 김현철 회장이 『북미공장 정상화에 전념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경영권을 동생인 김현배 회장에게 넘기기도 했다. 김회장은 취임 1년만에 삼미특수강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창원공장의 봉강·강관설비를 포철에 매각했지만 계속되는 자금난으로 끝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비운을 맞게 됐다.<문주용·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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