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40대 주부 박혜정(가명)씨는 1주일에 5일 출근해 하루에 다섯시간씩 계산대 업무를 맡는다. 박씨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구에게도 같은 일을 추천하기 위해 회사 측에 추가 채용계획을 문의했지만 '당분간 추가 고용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박씨는 "업무 시간이 길지 않아 자녀들에게 소홀해지지 않는데다 임직원 할인, 4대 보험 혜택도 누릴 수 있다"며 "같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1일 5시간 주4일 근무' '1일 7시간 주2일 근무' 등 유통업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따라 도입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경력단절 여성들을 중심으로 호평 받고 있지만 업체들이 추가 채용계획을 내놓지 않으면서 구직자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관련 업체들은 경기회복 수준이 기대 이하인데다 최근 세월호 참사 여파로 소비심리가 더욱 악화되면서 "있는 일자리도 줄여야 할 판"이라며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4대보험·식대보조·경조사·의료비 등 풀타임 정규직과 동일한 복리후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경력단절 여성은 물론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하는 젊은 층에게까지 인기가 높다. 지난해 연간 2,000명 정도를 뽑는 과정에서 경쟁률이 5대1에 육박했을 정도다. 하지만 신세계는 올 들어서 추가 채용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신세계백화점·스타벅스커피코리아·신세계인터내셔날·신세계푸드 등 계열사를 총동원해 가능한 일자리를 모두 찾아내 신규 인력을 고용했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는 "경기가 좋아 영업이 잘된다면 일자리가 더 생겨나겠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특히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마트가 소비침체와 영업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상반기 내에 1,944명을 시간선택제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던 롯데그룹은 3월 말 현재 54%에 해당하는 1,052명만 채용을 완료했다. 나머지 인력도 다음달까지 어떻게든 채용 절차를 마쳐 기한 내 목표치를 달성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하반기 추가 채용 여부는 불투명하다. 롯데그룹 역시 시간선택제 일자리 할당량이 가장 많은 유통 계열사들이 어려운 영업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롯데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풀타임 정규직 직원들도 재배치해야 할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소비부진은 정부가 야심 차게 지원하고 있는 시간선택제뿐만 아니라 기존의 단순 시간제 일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빕스와 투썸플레이스, 뚜레주르 등을 운영하는 CJ푸드빌은 매장직원을 시간제 근로자로 새로 뽑는 대신 기존 정규직 직원을 현장으로 파견하는 식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패밀리레스토랑인 아웃백과 T.G.I.프라이데이스 등도 시간제 근로자 모집 사이트에 점포별로 인력을 '상시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걸었지만 최소한의 매장 가동 인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곳이고 인건비 절감을 통해 이윤을 내는 매장이 대부분이어서 세월호 사고 여파가 분명히 있다"며 "일부 매장에서는 가맹점주가 아르바이트 채용을 접고 근무시간에 홀로 풀로 뛰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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