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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弱달러 유도의 속내
입력2003-05-25 00:00:00
수정
2003.05.25 00:00:00
유로화가 처음 도입됐을 때 유럽인들은 세계 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강력한 기축 통화인 달러화에 대적할 수 있는 통화가 탄생했다며 기뻐했다. 당시 유럽인들은 유로화가 달러화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기축 통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달러화는 유로화와 엔화에 대해서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달러화가 다시 하락하고 있다. 현재 유로화는 도입 초기 달러화에 대한 하락 폭을 전부 만회했다.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역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외환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한국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조지 W 부시 경제팀에게서 해답을 얻는 것은 무리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은 기자들에게 기존의 강한 달러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다가 이 전직 철도 중역(스노)은 약 달러가 미국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확실한 효과를 보고 있다며 이율 배반적인 애기를 늘어 놓고 있다.
사실 투기시장은 합법화한 도박판에 다름 아닐까. 뿌연 연기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혼돈 같은 것 말이다.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할 수 있다. 늘 그래 왔듯 때가 되면 현재의 달러 약세 기조는 다시 강세 기조로 바뀔 것이다. 그 같은 추세 전환에 즈음 해 민첩한 외환 거래자들은 달러 강세를 미리 내다보고 과감한 베팅을 실시해 차익을 두둑이 챙길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있든 현업에 있든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외환시장 요동을 설명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근거와 배경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밝혔듯이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미국 경기 회복 국면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요인들이 산재해 있어 자신 있게 경기 예측을 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열린 FRB의 공개시장위원회 모임에서 기준 금리를 일단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너무 많은 불확실성이 도처에 깔려 있어 FRB가 소신 있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월가 전문가들은 FRB로부터 확실한 사인을 받았다. 그린스펀의 디플레 경고가 그것이다. FRB는 미국 경제가 현재 가격 하락의 디플레 언저리에 있을 수 있으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디플레는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FRB의 행보에 대한 월가의 예측은 바뀌었다. 즉 미국이 올 하반기 회복 국면이 가속화하더라도 FRB가 섣불리 현재의 초저금리 상태에서 금리인상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디플레 경고는 유로화 상승과 달러 하락으로 이어졌다. 왜 그렇게 됐을까.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갖고 있는 자금이건 돈은 금리가 낮은 미국시장에서 금리가 높은 유로시장 쪽으로 옮겨가게 돼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변화는 경제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기 때문에 도박장의 공허한 소음과 예측 불가한 혼돈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노련한 그린스펀 의장은 신중하게 말을 선택한다. 말 자체가 자기 실현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디플레 발언은 미 장기 국채에 대한 수요를 촉발시켜 침체된 미 기업 투자를 진작 시키려는 고도의 계산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세계 시장 곳곳의 상품을 빨아들이며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자임했던 미국이 이제 약 달러를 유도함으로써 경제 침체에 빠져있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자국 통화의 평가 절하를 통한 수출 경쟁력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이의 연장 선상에서 한국의 수출 경쟁력 회복을 위해 원화가 달러화는 물론 유로화에 대해서도 가치 절하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자유무역을 주창했던 부시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표밭을 일구기 위해 서슴없이 새로운 철강 관세를 부과했다. 부시는 예일 대학에 다닐 때 경제학 점수가 월등하지 않았지만 그의 불도저식 행정부는 약 달러로 미국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핵 위협이 남한과 미국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특히 남한과 미국 양국간에 그 동안 쌓아온 경제 협력관계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폴 새뮤얼슨(노벨경제학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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