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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 '거수기' 벗어나 주주권리 찾을까

유경PSG, 투자회사에 주총 안건 제안·회계장부 열람 가처분신청

사업확장·실패 반복

삼성공조 상대로 '주주본색'


국내 자산운용사가 투자 회사에 주주총회 안건을 공식 제안하고 장부열람을 위한 가처분 신청까지 진행하는 사례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주주총회에서 거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운용사들이 본격적으로 주주권리를 행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경PSG자산운용은 이날 창원지방법원에 유가증권 시장 상장사인 삼성공조(006660)를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에 관한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국내 자산운용사가 회계장부 열람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모펀드 등이 회계장부를 열람하기 위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던 사례는 있었다.

유경PSG운용이 삼성공조의 회계장부를 열람하려는 것은 삼성공조가 지난 6년간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경PSG운용은 지난해 절대가치주(현금성 자산을 포함한 유동성 자산이 시가총액보다 월등히 큰 주식)로 분류되는 삼성공조에 투자했고 6개월 동안 4%대의 지분을 유지해오고 있다. 삼성공조의 유동자산은 지난해 3·4분기 기준으로 1,624억원이다. 삼성공조의 시가총액(16일 종가 기준)은 987억원으로 유동자산이 시가총액의 두 배에 가깝다.

삼성공조는 매년 자본금이 5억~15억원 정도의 소규모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타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투자한 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투자금을 날리곤 했다. 투자한 회사가 영업정지를 맞거나 폐업 처리되는 식이다.

최근 사례를 보면 삼성공조는 몰디브 현지에서 관광사업을 추진할 목적으로 자회사인 태일테크가 신규 출자하는 방식으로 2013년 7월 4일 2억1,898만원을 들여 코산몰디브스(Kosan Maldives·몰디브 소재)의 지분 93%를 획득했다. 같은 해 11월6일 반도체 검사장비 부품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4억원을 들여 반도체검사장비부품 회사인 아름의 지분 50%를 취득했다. 이듬해 6월 말 기준 코산몰디브스는 6,004만원, 아름은 3억8,629만원의 반기순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삼성공조 측은 공시를 통해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어 정상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삼성공조는 아름을 상대로 지급보증한 13억을 전액 손실처리했다.



삼성공조는 2009년 이후 매년 한두 차례씩 현재 사업내용과 관련성이 적은 사업에 손을 댔다가 이내 정상적으로 영업이 진행되지 못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왔다. 이에 따라 유경PSG운용은 삼성공조에 자회사 투자와 관련된 이사회의사록, 자회사의 재무제표, 모회사와 자회사 간 거래내역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삼성공조 측은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이사는 "장부 열람은 상법과 증권거래법상 보장된 주주의 권리인데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심기종 삼성공조 이사는 "사업보고서 내용 외에는 답변해줄 수 없다"며 "구체적인 경영 상황에 대해서는 답변해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유경PSG운용은 결국 회사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운용사들은 보통 장기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가치가 향상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편을 택한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은 지난해 9월1일 10년 넘게 투자했던 삼성공조의 지분 7.75%를 모두 처분했다.

유경PSG운용은 1월28일 업계 최초로 주주총회 안건을 제의했다. 유경PSG운용이 제의한 안건은 올해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선임하는 건이다. 유경PSG운용은 감사선임 건이 주총안건으로 상정되기만 하면 표 대결을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유경PSG운용은 자사(4.3%)가 확보한 지분을 포함해 피델리티운용(5.81%) 등 우호지분 17%를 확보했다. 고호곤 삼성공조 대표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3.20%이지만 감사선임 시 대주주 지분 참여를 3%로 제한하기 때문에 43.20% 가운데 3%만큼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아직 주총 일자와 안건은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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