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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창] 출자전환과 무상감자, 기업구조조정의 상식

이성엽 EY한영 감사본부 전무


수도가 일반 가정에 설치되기 전에는 작두 모양으로 생긴 물푸개로 밥 지을 물을 길었다. 낙동강 하류의 어느 마을에서는 성씨라는 동네 유지가 물푸개를 설치해놓고 물값을 받기로 했다. 물푸개는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관에 있던 물이 지하 깊은 곳을 향해 슬그머니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아무리 손잡이를 눌러대도 물이 나오지 않게 된다. 이는 물푸개 관 속에 있는 고무 피스톤이 닳거나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눌러주는 손잡이와 물푸개 몸뚱이의 연결 부위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성씨는 물값을 받아 물푸개 구입비용과 피스톤 등 소모품 교체비용을 회수했다. 물푸개를 관리하는 데 드는 자신의 수고비도 넉넉히 챙겨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마을 물푸개에서 물이 나오지 않게 됐다. 피스톤을 몇 차례나 교체했지만 물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성씨가 물푸개 관리를 제대로 해온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푸개에 일가견이 있다는 전문가들이 와서 물푸개와 성씨의 관리 내역을 조사한 후 의견을 제시했다. 고장 난 물푸개를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다시 고쳐서 물이 나오게 하는 것이 마을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은 먼저 성씨네 곳간에 쌓인 쌀을 팔고 그 돈으로 새로운 물푸개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3개의 구조조정 기업 중 채권자의 출자전환이 결의된 곳은 20곳이다. 이 중 대주주의 무상감자 없이 채권자 출자전환만 이뤄진 곳은 한 곳뿐이다. 기업구조조정이란 기존 사업구조나 조직구조의 기능과 효율을 보다 효과적으로 높이기 위해 실시하는 구조개혁 작업을 말한다.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동시에 출자전환 주식의 발행가액이 기준주가보다 높아지게 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실행하는 대주주의 무상감자는 기업구조조정의 가장 기본적인 조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대주주들은 당연히 해야 할 무상감자를 '고통분담' '상생과 협력' 등의 말로 포장해왔다.

이러한 최소한의 기본 원칙마저도 깬 사람이 '금품수수 리스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다. 그는 구조조정(워크아웃)을 'workout'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회의 중에 불만을 나타내기 위해 나가버리는 행동을 뜻하는 'walkout'으로 이해했다. 성 전 회장의 가는 길을 누가 열어준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경남기업 사례와 같이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시된 채 진행된 일련의 조치들로 피해를 보는 것은 선량한 일반투자자들과 국민들이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회계전문가들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기관의 이해관계 충돌과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 여기에 덧붙여 회계감사에 대한 독립성까지 훼손될 경우 투자자의 희생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투자자 역시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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