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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 곳간이 비어간다

작년 9월이후 수주잔량 지속 하락… 1년새 21.7%나 줄어<br>감소폭 중국보다 커 '조선 맹주' 위상 위협


한국 조선업계의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월별 수주잔량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1년 만에 무려 20% 이상 수주잔량이 줄어든 것.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 1년간 사실상 곳간에 저장해놓은 먹거리를 꺼내기만 했을 뿐 새롭게 채워넣지는 못한 셈이다. 6일 세계적인 조선ㆍ해운시장 조사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의 지난 10월1일 기준 수주잔량은 5,546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1년 전 7,091만CGT보다 무려 21.7%나 감소했다. 특히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수주잔량 감소폭은 전세계 조선업계의 수주잔량 감소 추세보다 가파른데다 글로벌 경기침체를 틈타 한국 조선업계의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한 중국에 비해서도 커 '조선 맹주'의 위상이 위협 받고 있다. 전세계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지난해 10월 2억136만CGT에서 이달에는 1억6,217만CGT로 19.4% 감소해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잔량 감소폭보다 적었다. 또한 중국의 경우 같은 기간 수주잔량 감소율이 13.0%에 그쳤다.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 감소폭이 큰 것은 배를 만들어 인도하는 물량보다 새롭게 수주하는 배의 물량이 적기 때문이다. 조선업체들은 지난해 상반기 사상 최대 매출 및 생산량을 기록하며 대규모 선박을 인도했지만 이를 대신할 만한 선박수주는 전무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9월 7,194만CGT로 정점을 찍은 후 12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한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금융위기로 선박금융이 얼어붙은데다 실물경기까지 침체되면서 해상물동량도 감소해 일반상선 발주가 거의 없었다"며 "1년 전만 해도 3~4년치 일감이 있었지만 현재는 2년치 정도의 일감만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국내 조선업계에 비해 중국 등 해외 조선업체들은 납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잔량이 쌓이고 해외 조선업계가 저가선박 수주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해외 조선업체들보다 인도물량이 많고 발주빈도가 적은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박 발주국을 중심으로 자국산업 보호주의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수주잔량 감소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 올 하반기에 대규모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및 드릴십을 발주할 예정인 브라질의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사의 경우 자국에 조선소를 확보한 기업에만 입찰자격을 주겠다고 이미 공표했다. 이에 따라 최근 이 회사가 실시했던 4척의 FPSO 입찰에서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브라질 기업이 선정된 데 반해 국내 기업들은 모두 제외됐다. 중국•러시아 등 주요 선박 발주국들도 선박입찰자격을 사실상 자국 기업으로 제한하거나 파격적인 금융지원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자국산업 보호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우리가 필요한 배는 우리가 만든다'는 기치 아래 전체 발주물량의 70~80%를 자국 내 조선소에 사실상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에는 이란 해운사가 발주한 12척의 초대형 유조선 수주전에서 중국 업체가 자국 국영은행이 배 값의 90%를 발주사에 대출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한국 업체들을 제치고 척당 1억달러가 넘는 초고가 선박 수주에 성공했다. 중국 조선업계는 이 같은 지원에 힘입어 올 들어 122척, 242만2,682CGT를 수주해 한국 조선업계(47척, 133만3,318CGT)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신규수주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전체 수주잔량 점유율도 33.7%로 높아져 34.2%에 그친 한국을 0.5%포인트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선박만 집중 공략했던 대형 조선업체들이 최근에는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벌크선 수주전에 뛰어드는 등 오랜 수주가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한국 업체에 발주를 몰아줄 만한 국내 대형 선주업체가 전무한데다 정부의 금융지원책도 미미하기 때문에 수주환경이 더욱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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