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화 절상 장기화 조짐… 기업들 대책 고심<br>하루단위로 운전자본 변동 점검… 원가절감·해외생산 비중 확대등<br>다양한 換리스크 대책 마련 나서… 800원대 맞춰 사업계획 짜기도
기업들은 주요 국가들이 환율을 빌미로 한국에 칼날을 세운 것은 한국의 주력 수출 업종과 기업들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당장 원화절상에 따른 피해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경쟁력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원고 장기화 추세의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이 같은 문제가 가져올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우선 급한 불부터 끄면서 비상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환매칭으로 대응, 비상대책 카드도 만지작=현재 기업들이 환율 급등락의 대응 카드로 주로 쓰고 있는 것은 환매칭이다. 환매칭이란 달러ㆍ유로화 등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다.
이 같은 방법은 전자업계는 물론 종합상사 등 대부분의 업계가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또 외환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기적으로 환관리위원회를 여는 방법을 통해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비상카드에 대한 고민도 본격화되고 있다. 환율 흐름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침체, 한국 상품에 대한 무역장벽 강화 등 여러 대외 변수가 돌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다음달 그룹 컨센서스 미팅을 통해 내년 사업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아직 비상대책을 수립한 단계는 아니지만 매출채권, 매입채무 등 운전자본 변동을 하루 단위로 점검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도 원화 절상이 수출 경쟁력 악화와 마케팅 비용 증가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유업계도 수출량 조정 등 환율 대책을 검토하는 등 금융위기 때 준하는 비상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무너진 환율 마지노선, 쌓여가는 고민들=기업들이 당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사실상 환율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1,100원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원ㆍ달러 환율이 1,050원까지 떨어지면 국내 91개 주력 수출기업의 영업이익이 5조9,0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내년 원ㆍ달러 환율 평균치를 1,110원으로 예상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이를 수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LG전자도 올해 연간 평균 1,150원대를 예상한 상태다. 현대ㆍ기아차는 올해 사업계획의 환율 마지노선을 1,100원으로 보고 있는데 이 역시 위협을 받고 있다. 현대ㆍ기아차의 경우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액은 약 2,000억원가량 낮아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SK에너지도 올해 환율을 1,138원으로 예상한 상태다.
현재의 환율 흐름을 볼 때 환율 절상 속도가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다수 기업들이 내년에 환율이 1,100원 이하로 떨어질 것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800원대에 맞춰 내년 사업계획 수립을 검토하는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원고 강세 지속 예상, 새로운 환경 대비를=문제는 이 같은 원고 장기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한국에 대한 통상환경 악화 등 예전과는 다른 사업환경도 예상되고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원가절감, 물류 효율화, 채권 미세관리,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비중 확대 등을 통해 원고 강세 장기화에 대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LG전자 등 다른 기업들 역시 해외 생산비중 확대 등을 통해 원고 장기화에 대비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또 자칫 원고 장기화가 제2의 일본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도 고심하고 있다. 엔고 장기화에 따른 일본 경제 및 기업의 부진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고가 장기화되면 한국의 주력 수출 기업들이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원ㆍ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연간 무역수지 흑자가 50억달러, 경상수지 흑지가 70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 같은 피해를 국내 주요 수출 기업들이 입게 되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환율 전쟁이 통상 문제로 비화될 경우 한국이 입게될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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