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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자산운용 지분 100% 인수를 추진하는 삼성생명이 소액 주주 지분 확보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100여명 정도 되는 소수 지분 주주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지분 매입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과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삼성생명과 소액주주 간 매입 가격을 둘러싼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부동산 시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지분 알박기(장소를 선점해 자리를 빼앗는 전략)'의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더욱이 삼성생명의 자산운용 인수는 그룹 측이 중장기적으로 진행하는 금융 계열사 간 포트폴리오 조정의 사실상 첫 단추라는 점에서 썩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21일 보험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최근 삼성자산운용 소수 지분 주주들에게 2차 주식 매입 안내서를 발송했다. 1차 안내서 발송 이후 주주들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추가 안내서를 보낸 것이다.
삼성생명은 기업은행과 삼성꿈장학재단 등의 지분 매입을 확정함에 따라 지분율 95% 이상을 확보했다.
나머지 4%대 지분은 삼성자산운용 전·현직 직원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 퇴직한 주주들이 문제다. 현직의 경우 직장생활을 위해서라도 삼성생명이 제시한 가격(2만2,329원)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퇴직 주주들의 사정은 다르다.
이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생명은 백방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계열사인 삼성증권 프라이빗뱅커(PB)를 통해 1대1 설득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고 외국에 살고 있는 주주들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그러나 주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소액 주주 지분은 삼성자산운용 주주배당금에 대한 면세 혜택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어서 삼성생명의 입장은 다급하다.
현행 세법은 국내 법인이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 지난해 배당금을 기준으로 하면 약 29억원(9개월치 배당금 186억원에 배당소득세를 매긴 값)을 아낄 수 있는 셈인데 만약 1명의 소수 주주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면세 혜택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일종의 '알박기'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삼성생명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소수 지분 매입에 실패하면 배당을 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당초 기대효과였던 면세 혜택을 받지 못할 바에야 배당금을 이익유보금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소액주주를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자산운용 지분 100% 매입은 금융계열사 지분 정리 작업의 신호탄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불발에 따른 부담이 크다.
나머지 하나의 카드는 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이미 9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나머지 지분에 대한 일종의 강제 매수권을 갖고 있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 삼성자산운용 100% 자회사 편입을 공언한 터라 어떻게 해서든 나머지 지분을 확보해나가지 않겠느냐"며 "합법적인 방법(주식 매수 청구권)도 있기 때문에 이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소수 주주들의 반발이 부담이다.
소수 주주 중에서는 삼성자산운용의 높은 배당성향을 고려할 때 끝까지 지분을 보유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삼성자산운용은 보통주 1주당 1,250원을 배당했는데 소수 주주들이 주장하는 장외거래가격(2만6,000원)을 적용해 배당수익률을 계산하면 4.8%가 나온다. 삼성생명이 제시한 희망매입가를 적용하면 연수익률은 5.7%로 늘어난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2%대 초반에 형성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소액 주주 입장에서는 지분을 넘길 이유가 없는 셈이다.
삼성생명이 기존 매입 가격을 유지한다면 이에 불복한 소수 지분 보유자들이 소송 등 법적 공방에 나설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자산운용의 한 소수 지분 주주는 "장외거래가격이 아닌 우리사주 매입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배당수익률은 20%대에 달하는데 이를 싼 값에 매입하겠다는 것은 경제논리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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