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기업들이 달라졌다. 불과 2~3년 전까지도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현금 보따리를 곳간에 쌓아둔 채 잔뜩 몸을 웅크렸던 기업들이 건국 60주년을 맞은 올해 글로벌 무대를 향해 ‘야수 본능’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국가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문화에서 자취를 감췄던 ‘기업가의 도전정신’이 정확히 10년 만에 활력을 되찾는 모습이다. 유례없는 불황기를 맞아 우리 기업들이 선택한 모험과 도전은 앞으로 숱한 역풍, 거친 파도와 마주칠 것이다. 이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도착할 미지의 영역은 대한민국이 희망의 미래를 펼칠 새로운 마당이기도 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염전으로 쓸모 없던 충남 태안. 이 지역에는 지금 LG그룹이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고 있는 태양광발전소가 자리잡았다.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이르는 30만㎡의 광활한 ‘엘도라도’가 처음 가동된 지난 5월16일 구본무 LG 회장은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홀로 이곳을 찾았다. LG의 또 다른 미래 먹거리인 LG이노텍의 발광다이오드(LED) 광주 생산공장을 다녀온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구 회장이 직접 잰걸음을 보인 것은 임직원들에게 ‘발상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라’는 암묵적인 압력. 그는 8일 계열사 CEO들에게 “중장기 전략이 대부분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일 뿐”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신수종 사업을 발굴할 것을 요구했다. 5년, 10년 뒤의 미래를 보장 받기 위한 기업과 오너들의 움직임에는 절박감이 짙게 배어 있다. 이윤우 삼성전자 총괄부회장은 취임 즉시 이건희 전 회장의 2006년 신년사를 언급했다. 최태원 SK 회장 역시 올 들어 숨돌릴 틈도 없이 미국과 중국 현지를 찾아다니며 현장 분위기를 직접 맡고 있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전공 분야도 아닌 비철강 영역에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들의 행보는 한결같이 ‘기업이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이 구조조정의 폭풍에 맞선 ‘생존경쟁의 시대’였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신사업 진출전(戰)’은 미래를 놓고 펼치는 ‘재무장의 기간’이다. 4대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사석에서 “장담하건대 앞으로 1~2년 동안 어떤 경영전략을 펼치느냐에 따라 10년 안에 재계의 판도가 다시 한번 바뀔 것”이라고 단언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기를 한국 경제가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은 정부와 국회도 하고 있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불황기에 투자하지 않으면 호황기를 어떻게 누리겠느냐”며 “진짜 돈을 버는 기업은 지금 나설 것이고 어정쩡하게 방관하는 기업은 늦게 투자했다가 상투를 잡을 것”이라고 재계의 신사업 진출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은 “내년부터는 경제가 반드시 살아난다”며 “국회에서도 기업들의 신사업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 법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여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지원사격을 준비하니 보조를 맞춰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들. 그 성적표는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김도원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파트너는 “과거 불황이었던 시기를 보면 상위 10대 기업 중 3개 정도는 도태하고 새로운 기업이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재계의 지형도가 송두리째 바뀐 것과 유사한 양상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얘기다. 2018년 재계에 어떤 지형도가 다시 그려질지는 지금 기업들이 진행 중인 ‘신사업전(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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