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엇갈린 통화정책이 연초부터 한국경제의 회복세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경기 회복을 좌우하는 미국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착수하고 최대 경쟁국인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예고하면서 중간에 낀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테이퍼링은 환율상승(원화약세) 요인이고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은 환율하락(원화강세) 요인이다. 문제는 두 변수가 팽팽히 맞선다는 점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G4(미국·유럽·일본·영국)의 각자 다른 정책 방향이 미칠 영향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까지 미국만 바라보던 상황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이라는 점에서 외환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외환시장의 통상 흐름과 달리 수출경쟁력 하락과 자본유출이 동반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가격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금융시장은 주요국의 통화정책과 외국인의 변덕스러운 자본유출입에 동시에 대처해야 하는 형국이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4·4분기 일본기업 실적이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의 이탈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자금, 일본으로 빠져나가나=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의 이탈 여부는 연초부터 금융시장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 2~3일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6,351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211억원을 순매도했다. 당초 '1월 효과'를 기대했던 시장은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금요일(3일) 외국인들이 대거 원화를 달러로 바꾸고 일본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지난해 8~10월 사이 14조4,000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는데 이 중 상당수가 빠져나가려고 대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달부터 일본 주요기업들의 4·4분기 실적이 나오는데 외국인들은 일본 기업들이 환차익을 얻어 실적이 크게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엔화약세를 뛰어넘는 실적호조를 기대하면서 일본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일본으로 돌린다는 것"이라며 "이번주부터 이들 달러로 바뀐 자금이 일본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했다.
반면 한국 기업실적은 삼성전자 등을 포함해 다소 안 좋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원·엔 환율 하락에 따른 피해가 4·4분기부터 본격화하는 '제이커브(J-curve) 효과'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우려가 다소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엔화 약세가 한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수출증가·성장 등 긍정적인 다른 변수도 있는데 시장 관심이 엔화에만 너무 집중된 모습"이라며 "연초에 좋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시장이 다소 오버슈팅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율하락에 수출 가격경쟁력 비상=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선이 깨지자 당장 수출기업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연 평균 엔·달러 환율이 105엔을 기록할 경우 국내 총수출은 전년 대비 2.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산업별로 철강(-3.5%), 기계(-3.2%), 자동차(-3.2%), 석유화학(-3.1%), IT(-2.2%) 등의 타격은 상대적으로 크다. 연 평균 110엔으로 엔화 절하가 가팔라질 경우 국내 총수출 감소폭은 -3.2%로 커진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원·달러 환율을 1,050원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원·엔 환율 하락을 간접적으로나마 방어하는 모습이지만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심리적 방어선'인 1,050원대가 조만간 깨질 것이라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정부가 1,050원선을 지지하고 있지만 경상흑자가 유지되면서 1,050원이 깨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방어하는 원·달러 환율 '1,050원 선'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일각에선 정부개입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과 가격의 괴리가 커지면서 변동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정부가 더 강한 구두개입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실무진 일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민간연구소의 한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는 1,050원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이지만 이를 고수하다가 변동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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