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A급 회사채들이 시장에서 무리 없이 소화되며 회사채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회사채 발행기업이 낮은 금리만 고집하는 관행이 점차 사라지며 수요예측제도가 안착되는 분위기이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회사채 수요예측을 실시한 12개 기업 가운데 미달이 발생한 것은 GS건설과 동부팜한농뿐이다. LG생활건강의 회사채 수요예측에는 5,000억원 모집에 1조원 가까운 자금이 몰리며 인기를 누렸고 크라운제과, 현대로템 등 A등급 회사채들도 자금몰이에 성공했다.
회사채 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수요예측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는 지난해 4월 회사채 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수요예측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이 제도는 최종 발행조건을 결정하기 위해 발행사와 주관사가 희망금리 밴드를 제시한 후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을 파악하는 절차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입김이 센 기업들이 낮은 금리를 고집하면서 미달이 속출했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중부발전(AAA) 등 최고신용등급의 회사채는 물론 CJ E&M(AA-), OCI(AA-) 등 기관들이 선호하는 AA등급의 수요예측에서도 기관수요가 ‘제로(0)’로 나타났다. 발행기업이 시장 예상보다 낮은 금리를 제시하자 기관투자자들이 수요예측에 암묵적으로 보이콧할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했다. 결국 회사채 발행을 주관한 증권사들이 팔리지 않은 물량을 떠안은 뒤 유통시장에 높은 금리로 내다 팔아 손실을 보게 됐다.
하지만 미매각 회사채로 골치를 앓던 증권사들이 회사채 발행 금리의 정상화에 앞장서면서 수요예측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는 상황이다.
연합자산관리(AA-)는 이달 2,2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계획했지만 철회했다. 연합자산관리가 시장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저금리의 발행을 고집하면서 주관사인 KDB대우증권과 의견 충돌이 발생한 것. KDB대우증권이 주관을 포기하면서 연합자산관리 역시 회사채 발행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발행기업들 역시 저금리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장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A)는 최근 회사채 발행규모를 기존 1,6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웅진그룹 사태 이후 A급 회사채가 시장에서 외면 받는 점을 고려해 발행금리를 대폭 높였고, 수요가 넘쳐나면서 발행물량을 늘린 것이다.
황운하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채 수요예측제도는 발행금리를 투명하게 결정할 수 있고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발생하는 가격괴리를 줄이는 장점을 지녔다”며 “최근 수요예측제도가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회사채 시장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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