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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순간들] <11> 동부그룹-아남반도체 인수

"반도체 포기못해" 20년을 벼른 결단<br>2002년 절체절명 경영난 순간에 정면돌파 승부수<br>계열사 강제매각 요구·신용등급 일제 하향등 시련<br>신디케이트론 발행으로 유동성 위기 무사히 넘겨<br>이젠 그룹 성장엔진으로 '제2 반도체신화' 준비<br>


“(반도체사업을) 7~8년 앞당길 수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긴 침묵을 깨고 짧고 단호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임원들의 난상토론으로 떠들썩했던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20년간 벼르고 벼른 반도체 사업을 접을 수 없다는 김 회장의 결단이 아남반도체 인수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던 2002년 7월.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는 반도체 산업을 살리느냐 마느냐 하는 ‘마지막 카드 ’였다. 성공하면 계열사도 살고, 김 회장도 살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싫을 정도였다. 당시 재계에서는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를 놓고 뚝심의 김 회장이 모험이 아닌 도박에 나섰다고 입을 모았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06년 3월. 동부아남반도체는 동부일렉트로닉스로 다시 태어났다. 반도체사업은 이제 그룹의 성장엔진으로서 점차 빛을 발하며 또 하나의 성공신화 탄생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20년을 벼른 선택=지난 83년 국내 최초로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하며 반도체부문에 뛰어든 동부그룹은 우여곡절 끝에 틈새시장을 찾아 비메모리 파운드리(수탁가공생산)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동부는 도시바와 제휴를 맺고 2001년 4월말부터 생산에 들어갔지만 곧바로 9ㆍ11테러에 따른 세계경기 둔화와 반도체 경기 악화라는 한풍이 휘몰아쳤다. 애써 추진해왔던 3억5,000만달러의 외자유치도 쉽지 않았다. 월 2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지만 동부전자의 생산량은 월 5,000장에 그쳤다. 추가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금만 야금야금 까먹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80년대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김 회장은 이 같은 위기를 특유의 결단력으로 정면돌파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의 선택은 당시 국내 유일의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인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일단 인수방침이 결정되자 곧바로 발빠른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분인수전에서 이중 전략을 펼치며 아남반도체의 유상증자 및 아남반도체의 대주주인 엠코 지분 인수에 동부건설, 동부화재 등 계열사들이 참여했다. 물론 2003년 금융계열사들은 부당지원 의혹을 벗기 위해 지분을 매각했다. 안광조 동부일렉트로닉스 부사장은 “비메모리반도체 회사 하나 만드는데 1조원이 넘는 돈이 든다는 것을 감안하고 기존 동부전자와의 시너지 효과를 생각한다면 아남반도체 인수는 필수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집념은 시련을 극복한다=아남반도체 최종인수를 발표한지 일주일 뒤 동부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계열사인 한농화학을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융권에서는 동부가 반도체 사업을 하려면 기존 계열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언론에 흘렸다. 그룹 전체를 뒤흔드는 시련이었다. 여기다 신용평가 3사가 동부금융계열사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하기까지 했다. 그룹 전체를 흔들었던 유동성의 문제는 그 해 11월 5,000억원의 1차 신디케이트론 계약을 성사시키며 가라앉았다. 동부전자는 2년 뒤인 2004년 11월 1조2,000억원의 2차 신디케이트론을 발행하며 시장이 우려했던 설비투자자금 조달 문제를 해결했다. 그룹 관계자는 “인수 후 합병까지 2년동안 국내 금융권의 냉대가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며 “아예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은행으로 가서 은행에서 퇴근했다”고 털어놓았다. . 2006년 4월 동부일렉트로닉스는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대주주의 지분을 3.22%에서 7.3%로 늘렸다. 실권주 인수를 통해 대주주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구자용 동부일렉트로닉스 자금담당 상무는 “실권주 유상증자에 대주주뿐 아니라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도 참여했다”며 “동부일렉트로닉스를 과거의 동부아남반도체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만든다=이달초 찾은 충남 음성의 동부일렉트로닉스 상우공장. 직원들은 24시간 공장을 돌려도 미처 주문을 맞추지 못할 지경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일감이 없어 공장의 절반이 놀고 있었던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동부일렉트로닉스의 2006년은 희망의 해이다. 반도체 호황에다 그룹차원의 지원까지 더해지며 직원들의 눈빛이 확 달라지고 있다. 오영환 동부일렉트로닉스 사장은 지난 3월 사명을 변경하며 “반도체 사업을 그룹의 핵심 주력사업으로 성장시키겠다”며 수익성 개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대내외적으로 표명했다. 이러한 동부일렉트로닉스의 희망은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설계자산(IP)을 확보했으며 부가가치가 높은 디스플레이와 모바일 분야의 공정기술을 잇따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공정기술 표준화를 통해 생산성을 30%이상 높인데다 국내 팹리스 업체와의 동반성장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동부일렉트로닉스는 올해 전년 대비 약 30% 늘어난 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송재인 동부일렉트로닉스 마케팅담당 상무는 “꾸준한 시장확대와 고부가가치 기술개발이 계속되고 있어 내년에는 매출 증대와 손익 개선을 일궈낼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에 대한 동부그룹의 강한 집념이 이제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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