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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은행소유 허용(논쟁)
입력1997-03-20 00:00:00
수정
1997.03.20 00:00:00
이필상 기자
◎경영정상화 위해 불가피 경제력집중 심화 불보듯금융개혁위원회가 금융산업 개편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재벌의 은행소유를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또다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보다 책임있는 경영이 가능하고 한보사태처럼 어처구없는 부실대출의 재발을 막는 장치가 된다는 당위론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여건상 소유지분 비율만으로 따져 지배주주를 결정할 경우 재벌이 은행의 최대주주가 되기는 매우 쉽게 돼 있다. 이 경우 가뜩이나 산업부문에서 재벌의 경제력집중 폐해가 많은 실정인데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까지 허용할 경우 경제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소지가 크다고 재벌의 은행지배 소유 반대론자들은 지적한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종금 보험 증권 등 제2금융권에서는 이미 재벌의 소유지배가 인정되고 있는데다 전면적인 금융개방을 앞두고 대내외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현실적인 차선책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전문가 기고를 통해 찬반론의 논지를 정리한다.<편집자 주>
◎찬성/이인형 LG경제연 연구실장/금융개방 눈앞… 은행경쟁력 확보 차선책/M&A 집행력부여 구조개편 가속 효과도/예금자보호·사후감독 철저 등 안정장치 마련해야
국내 금융산업은 실물부문에 비해 질적인 측면에서나 규모면에서 그 발전이 매우 취약한 상태다. 하지만 금융산업이 한 나라경제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고려한다면 금융산업의 발전은 경제전체의 장기적으고 원활한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금융산업은 어떠한 산업보다도 실물부문 근저의 효율성을 좌우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국내경제의 심각한 문제점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도 금융산업의 역할은 어느때 보다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정된 자금을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배분하는 역할이 바로 금융산업의 본업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금융산업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선행되야 할 몇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규제와 보호에서 벗어나 건전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경쟁격화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성확보다. 둘째 조건인 안정성문제는 금융산업이 갖는 특이한 성격에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여러 기업들에게 대출을 하고 동시에 지급보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경쟁격화 혹은 잘못된 경영으로 금융기관이 도산하게 될 경우 이는 해당금융기관의 파산으로 끝나지 않고 금융부문전체, 나아가 경제전체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 및 금융감독기관들은 금융의 안정성확보를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경쟁강화와 안정성은 서로 상충되는 부문이 있기도 하지만 성숙된 경제의 경우에는 적절한 조화를 통해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자본의 금융산업참여문제는 위의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에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산업진출은 첫째 조건인 경쟁강화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실물경제의 발전과정에서 금융기관의 경영은 다분히 정부의 의도대로 좌지우지돼왔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지도에 따른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채 자율과 책임에 의한 경영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보다 주체적인 경영의식을 지닌 기업들이 금융산업에 참여하게 된다면 수익성에 입각한 금융기관 경영정상화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국내의 경우 부실금융기관 처리문제에 있어 합병을 통한 정리를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경우 합병의 성사를 위해서는 확실한 소유주체와 일정한 자본격이 필요하다. 산업자본의 참여는 이러한 의미에서 합병의 동기부여 뿐 아니라 실질적인 실행력을 부여하여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가속시킬 수 있다.
더욱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전면적인 금융산업 개방이 가속될 예정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쟁상대는 국내의 금융기관들이 아니라 규모 및 전문성에서 월등히 앞서 있는 국제금융기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금융기관들은 미국을 제외한 독일 및 일본의 경우 명백한 의미에서 금융부문과 산업자본과의 소유가 독립되어 있지는 않다.
독일 및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초기에 한정된 자본에 의해 기업들은 자금조달을 은행에 크게 의존했고 각기 그 나라 경제구조 및 관행에 맞게 발전돼왔다. 독일의 경우는 금융산업의 실물산업 지배, 일본의 경우는 금융과 산업간 상호소유형태로 전개돼왔다.
국내금융기관들이 외국의 금융기관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국내금융산업과 산업자본간의 소유에 대한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조건인 안정성의 문제에서는 사실 역설적인 측면에서 산업자본의 참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앞서 지적했지만 정부는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해 예금자보호나 지불준비금제도와 같은 안정장치를 제도화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기업군이 은행과 같이 안정장치의 1차대상이 되는 금융기관을 소유할 경우에 자동적으로 모기업집단이 보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내의 경쟁을 촉진시킨다는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잘못될 경우에는 자금흐름을 왜곡시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금융기관들의 소유현황을 보더라도 이미 사실상 다수의 기업이 금융기관의 소유에 참여한 상태다. 은행의 경우 기업집단에 의한 은행의 지분참여현황은 활발해 몇개의 대주주가 담합할 경우 은행을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며 다수의 지방은행의 경우 산업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소유규제의 실효성이 저하되어 왔다.
따라서 금융기관 소유규제에 대한 정책방향은 경쟁제한적인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는 것이 옳다. 다만 경제력집중에 따르는 부작용과 자금흐름의 왜곡에 대해서는 사후적인 감독에 의해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력
▲64년 경기안성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 브라운대 경제학박사
▲수원대 무역학과 교수
◎반대/이필상 고려대 교수/국민재산 사금고화·정경유착 제도화/산업자금 분배왜곡에 가계·중기 피해/관치금융 혁파… 「국민 소유-전문인 경영」 체제 도입을
한보 부도사태이후 은행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은행에 주인이 있었다면 5조원이 넘는 부실대출이 가능했겠냐 하는 논리다. 이에 힘입어 금융개혁위원회는 은행비상임이사회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5대재벌에 대해서 비상임이사회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은행의 지배구조에 재벌 기업의 참여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와 정책은 한보사태의 본질을 왜곡하여 해석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자칫하면 은행을 불공정 비리의 제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한보사태는 정경유착이 빚어낸 우리 경제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수서비리와 비자금 사건으로 문제가 많았던 기업주에게 5조원이란 거액의 대출을 제공한 것은 경제논리로는 해석이 안된다. 그동안 대규모 은행대출의 결정은 사업의 전망이나 수익성에 의거하기보다는 권력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재벌의 탐욕이 결탁하는 정경유착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은행과 기업이 함께 부실화하며 산업기반을 무너뜨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렇게 볼 때 한보사태는 은행이 권력과 재벌의 은행지배권을 확대할 경우 이러한 정경유착 비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여 경제를 더욱 심각한 비리의 수렁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실제로 과거 35년간 정경유착 비리의 근본적인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 금융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금융을 통제하면 경제의 생명줄을 장악하는 것이 되어 정경유착 비리를 쉽게 저지를 수 있다. 금융제도가 비리의 온상이 된 것은 정부의 은행장악에서 시작하였다. 60년대초 정부는 관련 법들을 개정하여 정치적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통화를 발행하고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장악했다. 그리고 국민을 고도성장에 도취시키면서 정부는 통화를 과잉으로 증발하면서 재벌기업들에게 집중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은 관치금융의 노예가 되어 정치권력의 지시에 따라 자금을 재벌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에게 은행지배를 허용하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관치금융체제에서 재벌금융체제로 중심을 바꾸어 정경유착 비리를 통해 국민의 재산을 더 자유롭게 희생시키는 수단이 된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할 경우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이윤추구 또한 더 확산한다. 그리고 중소기업과 서민가계는 궁핍이 심화된다. 더욱이 신기술 개발과 생산성 제고보다는 문어발식 확장에 노력을 집중하여 우리 경제의 국가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결국, 나라경제는 후진국으로 전락해도 재벌기업들은 국민경제를 인질로 잡고 부당한 부의 축적을 꾀하는 반사회적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수요자는 저축을 하여 자본을 형성하는 국민이다. 또 산업구조의 저변에서 기술개발에 자금이 부족하여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들이다. 이들의 희생을 전제로 재벌기업들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파괴 행위로 볼 수 있다.
금융기관은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기업이기에 앞서 국민에게 공평한 부의증식기회를 제공하고 산업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건전한 경제발전의 질서를 형성하는 공공기관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을 특정 이해집단의 지배체제하에 넣는것은 공평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은행을 재벌에게 넘겨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은 금융기관 본연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기업의 부당이윤 추구행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금융산업이 낙후한 것은 관치금융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를 혁파하고 감량경영과 경영혁신을 꾀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상황에서 금융산업 낙후를 시정하기 위해 재벌을 개입시키는 것은 더 위험한 적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은 완전경쟁 여건이 성립할 때에 한하여 제기능을 발휘하며 최선의 자원배분을 가져온다. 독과점적인 지배요인이 존재하면 시장은 자원의 공정분배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범경제적인 비효율을 초래한다. 이런 시장체제하에서 자원배분의 결정은 시장기능에 따라 결정되어 소유주의 주관적인 선호와는 무관해야 하는데 이를 소유와 경영의 분리원칙이라 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원칙은 전문인에게 경영을 위임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이러한 이론적 근거에 의해 형성된 은행의 지배구조가 선진국들의 금융산업 발전에 기반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시장경제의 근간인 금융시장에 있어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전문경영체제의 도입은 정상적인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금융시장만큼은 시장 원리에 맞추어 소유를 국민에게 분산하고 국민의 감시하에 전문인들이 경영하는 민주적 경영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와같이 국민이 금융기관의 주인이 되어야 함은 한보사태에서 본 바와 같이 부실경영에 따른 모든 피해는 국민의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더욱 명약관화하다.
◇약력
▲47년 인천생
▲서울공대
▲미 콜럼비아대경영학박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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