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조현정 벤처기업협회장 "참여정부 초기 2년간 벤처 철저히 무시"일부선 "DJ정부 치적으로 인식 의도적 푸대접"벤처, YS가 성장기틀 마련·DJ 지원으로 발전"재벌시스템은 한국경제 자산" 성과는 인정해야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 관련기사 '외환위기 그후 10년' 시리즈 전체보기 (2부-7) 되풀이 되는 거품성장 벤처 클러스터 만들려면… [시론] 외환위기후 10년… “DJ정부 마지막 2년이 벤처에 대한 ‘비난의 해’였다면 참여정부 초기 2년은 ‘무관심의 해’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벤처 기업인들을 만나주지 않아서 지난 2003년 5월 대통령 방미 때 10분간의 독대를 위해 워싱턴까지 날아갔을 정도였다” 벤처 1세대인 조현정 벤처기업협회 회장(50ㆍ사진)은 “벤처 기업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조기 졸업, 고용 창출, 지식정보화 등에 기여했다고 자부심을 가졌는데 참여정부는 관심조차 없었다”며 “벤처산업 육성이 DJ 정부의 치적이어서 차별화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벤처 기업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 83년 인하대 3학년 재학시절 비트컴퓨터를 창업, 대학생 벤처 1호가 된 벤처업계의 산증인. 외환위기 이전 벤처 산업의 맹아기부터 DJ 정부 이후 벤처 성장과 버블 붕괴, 재도약 등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수많은 벤처기업인들이 문어발 확장, 분식회계, 수익성 악화 등으로 속속 낙마하는 와중에도 꿋꿋이 벤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DJ 정부의 역할에 대해 “벤처산업의 발전을 DJ의 공으로만 돌리는 세간의 평가는 사실과 다르다. YS 정부가 벤처기업특별법이나 코스닥 시장 개설 등의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DJ도 벤처를 키우기 힘들었다. YS가 벤처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고 DJ가 실제 정책 지원으로 키워냈다”고 설명했다. - 재벌 위주의 성장 전략이 외환위기를 불렀다는 비판이 많다. ▦ 재벌 시스템에 대한 비판 세력은 자주 중소기업이 강한 대만과 비교하는데 한국의 성장전략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탈리아 베네통에서 보듯 미래 비즈니스는 제품만 싸게 만든다고 잘 팔리는 게 아니다. 브랜드가 더 중요하다. 한국 기업과 달리 대만은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적다. 재벌 시스템은 한국 경제의 자산이다. 글로벌 경쟁하에서 선단식 경영이 아니면 살아나기 힘들었다. 개발경제 시대에서 최적의 진화 방식이었다고 본다. 사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ㆍ고위험 고수익)’이나 도전정신 측면에서 본다면 정주영 현대회장이 진정한 벤처기업인이다. 물론 지금 쓰이는 벤처기업의 의미와는 다르지만….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서는 뜻밖의 발언인데. ▦ 박정희 정부 시대의 압축 성장은 문제점이 있지만 그 성과만은 인정해야 한다. 가령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개인적으로 경제계의 영웅이라고 본다. 벤처 기업도 ‘먹튀(먹고튀기)’, 분식회계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성장통(痛)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경제 정책에는 명암이 있다. 짧은 시간내 성장 전략을 찾다 보면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 DJ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외환위기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새성장 동력으로 벤처산업을 지목했는데. ▦벤처 산업의 발전을 DJ의 공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YS정부 말기에 벤처산업육성특별법이나 코스닥시장 개설 등을 통해 기술집약적인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마련했다. 물론 YS는 개인적으로 벤처에 대한 큰 그림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YS정부 때의 준비 과정이 없었다면 DJ도 힘들었을 것이다. YS가 벤처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고 DJ가 실제 정책 지원으로 키워냈다고 보면 된다. 여기다 밀레니엄 특수 등 전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 호황이 불어오고 벤처기업협회를 중심으로 한 벤처 1세대들의 사전준비에 힘입어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 정부 주도의 벤처 산업 육성이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이 있다. ▦ 물론 ‘무늬만 벤처’들이 양산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 양산으로 가계가 망해가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구조조정하느라 바빴다. 고용을 창출하고 실제 매출이 늘어난 데는 벤처밖에 없었다. 또 DJ 정부가 벤처에 돈을 쏟아붓은 걸로 알고 있는데 실상은 다르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 발행 외에는 거의 없었고 환경 조성이 주를 이뤘다. 가령 교수들이 창업하면 겸직할 수 있도록 해 우수인력이 벤처로 몰리고, 벤처 빌딩을 지으면 취득세ㆍ등록세 감면 혜택을 줘 벤처의 집적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 벤처 산업의 공과를 요약한다면. ▦ 노동집약적 구조였던 국내 산업이 3~4년만에 지식정보화 구조로 바뀌었다. 바로 벤처기업이 해낸 것이다. 일반 기업에도 성과주의 문화나 팀 위주의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확산됐다. 지금 1만2,000개의 벤처가 있는데 노조는 단 2개 뿐이다. 직원을 노동자가 아니라 파트너나 예비 사장으로 취급하니까 다들 열심히 일 한다. 고용 증가율, 성장성 등 통계 지표상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다. - 벤처기업인들이 분식회계 등으로 줄줄이 구속되고 수익성 부족으로 망하기도 했는데. ▦ 당시 상황에서 이해해달라. 미국의 벤처 역사는 휴렛패커드(HP) 창립으로 보면 69년, 나스닥 시장 개설로 보면 25년이나 된다. 미국은 숱은 기업의 탄생과 성장, 몰락 등의 회오리를 반복하다 기술 강국이 됐다. 우리는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단 한번의 사이클을 경험했을 뿐이다. 초기 벤처인들은 기술력 하나만 믿고 덜렁 회사를 만들었지만 투자 자금, 우수인력 확보 등 모든 측면에서 어려웠다. 그러다 밀레니엄 특수 등으로 주가가 연일 올랐다. 벤처인들은 자기 주식을 담보로 맡기고 신사업을 벌였는데 주가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떨어졌다. 금융사들은 추가 담보를 내던가 원금을 갚으라고 하니까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았다. 일종의 성장통이지 모럴헤저드는 아니라고 본다. 벤처 1세대들도 과거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사고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벤처 산업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 2000년 벤처 버블이 꺼졌고 2001~02년에는 각종 벤처 게이트가 터졌다. 사회 분위기가 벤처 기업을 사기꾼이나 모럴헤저드 집단으로 몰아갔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아예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이 하도 안 만나주니까 2003년 5월 미국 방문 때 장흥순 당시 벤처기업협회 회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김형순 로커스 사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등 벤처기업인 4명이 일부러 따라갔다. 오로지 10분간의 독대를 위해서였다.(당시 정부의 무관심에 좌불안석이던 벤처업계는 “노 대통령이 벤처와 IT산업을 신성장산업의 엔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장 회장)며 애써 자위하기도 했다.) - DJ정부의 작품이라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 일부에서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DJ의 벤처정책은 IMF 조기 졸업, 고용 창출, 지식정보화 사회 정착 등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벤처기업협회가 기술거래소 설립에 77억원을 출연하는 등 벤처 1세대들이 수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지만 정부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우리도 미친 짓 하는 게 아니냐는 자괴감이 들었다. 2004년 이민화 전 협회 회장이 마지막으로 해보고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하자고 했다. 결국 이헌재 당시 부총리,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등 정치권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 ‘벤처 활성화 대책’이 만들어졌다. 이후 코스닥 지수 상승, 다양한 투자 펀드의 등장, 정부 지원 강화 등으로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 참여정부에서는 큰 그림의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 참여정부는 산업 정책을 시장에 맡기는 것 같다. 정부가 지난 2004년 7월 ‘중소기업 경쟁력강화 종합 대책’을 발표했는데 ‘선택과 집중’으로 기업을 육성하려는 뜻으로 본다. 단체수의계약제도도 폐지해 로비가 아니라 경쟁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기술력을 가진 벤처 기업은 성장할 수 있는 구조다. 또 노 대통령이 ‘상생협력회의’가 여섯 차례나 개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등하게 경쟁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줬다. 작은 부문으로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효과는 크다. - 벤처 산업이 더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 우선 인수ㆍ합병(M&A)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업계 내부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고 관련 법도 정비돼야 한다. 기술력을 가졌더라도 마케팅, 판매, 경영까지 잘할 수는 없다. 시장에서 검증된 업체들끼리 흡수통합해야 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코스닥 지수가 올라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넓어져야 한다. - 예비 벤처 기업인들에 조언이 있다면. ▦예비 창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 기술이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최고로 잘 팔리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시장에서 원하는 기술을 내놓아야 한다. 또 벤처 업계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이 필요하다. 경쟁회사라도 좋은 모듈이 있으면 쓸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또 2000년 버블 전후에는 투자자들이 투자할 때 CEO 자질은 20%만 보고 성장성이나 기술력을 보고 들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CEO의 자질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벤처 1세대는 지금…] 분식 회계 파문에 대부분 중도 탈락 지난달 1월4일 벤처기업협회는 이사회를 열고 백종진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6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벤처 업계는 이를 세대교체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오는 3월 총회에서 백 대표가 공식 취임하면 벤처기업의 간판이 벤처 1세대에서 2세대로 바뀌기 때문이다. 역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이민화, 장흥순, 조현정 등 80년대에 창업한 인사들이 맡아왔다. 이들 벤처 1세대들은 척박한 토양에서 벤처 산업의 기본 틀을 마련했고 지난 2004년말 벤처활성화 대책과 올해 벤처기업특별법의 유예를 이끌어내는 등 벤처 부활에도 막대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드라마틱했던 벤처 산업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 했던 벤처 1세대들은 지금 어떤 신세가 됐을까. 이들은 '외환위기 극복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분식회계 파문 등으로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돼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과정에서 대부분 중도 탈락했다. 지난 1999~2000년 주가상승률 상위 9개 벤처 기업의 CEO 가운데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 장흥순 터보테크 대표,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 허록 리타워텍 대표, 김진호 골드뱅드 사장 등 5명은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로 형사처벌됐다. 이들 중에는 처음부터 사기성 사업 아이템으로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먹고 튄' 벤처인도 있지만 성장성과 수익성을 증명하고도 환경 변화에 적응 못해 몰락한 기업인도 있다. 벤처기업협회 회장까지 역임한 장흥순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장씨는 지난해 7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김형순 로커스 사장도 390억원대의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좌초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식을 담보로 맡기고 신용 대출을 받았는데 주가 하락으로 은행이 추가 담보나 상환을 요구하자 분식회계로 주가 떠받치기를 시도한 것. 이 때문에 벤처업계는 성장성 평가보다는 개인의 보증을 요구하고 실패한 벤처기업인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풍토가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벤처인들이 재벌 오너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창업한 기업은 내 것'이라는 구시대적 사고에 젖어 있다 보니 생긴 사고"라며 "업체간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가 안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벤처 1세대들이 대부분 몰락했지만 이재웅 다음 사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안영경 핸디소프트 고문,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등 아직 건재한 벤처인들도 있다.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과 이찬진 전 한글과 컴퓨터 사장 등도 재기를 꿈꾸고 있다. 입력시간 : 2007/02/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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