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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마음이 가난한 선물

김인숙(소설가)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하나 뿐인 아이를 학교에 처음 보내놓고나니 궁금한 것도 많고 걱정되는 것도 많았다. 당연히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찾아 뵙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을 어떻게 들고 찾아가느냐는 것이었다. 촌지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것 저것 고민하지 말고 돈봉투 하나 들고 찾아가는게 제일 속편한 일이라는 주위의 선배 학부형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골라보려고 동네의 백화점과 소핑센터를 전부 돌아다니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장식품 시계를 하나 고르게 되었는데, 막상 그걸 포장해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들고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무 작은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걸 선물했다가 오히려 욕이나 먹지 않을까. 역효과나 나지 않을까. 차라리 촌지를 해버릴까하는 유혹이 생겼지만, 다시 한번 눌러참고 또다시 백화점을 돌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다시 백화점을 돌기 시작하면서부터는「선물」을 고르려는 것이 아니라「뇌물」을 고르려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었다. 마음이 담긴 물건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에 보기좋을 것 같은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욕먹지 않을 것 같은 물건. 그런 짓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건 정말 고역스러운 일이다. 나중에는 선물도 뇌물도 아니고 마치 벌을 서는 기분인 듯 싶어졌다. 끔찍히 하기 싫은 일을 고삐에 끌려다니며 해야하는 일을 한다면 그런 기분일까. 그러니 사고 싶은 물건이 눈에 들어올리도 없고, 눈에 들어온다면 해도 판단도 서지 않고, 결국 한나절 다리품만 판 끝에 「촌지」에 투항해버리게 되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 그 촌지의 대가는, 호된 야단 뿐이었다. 만나서 왜 그런 짓을 해야만 했는지 토론을 해보자는 말씀도 들었었던가. 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내 부끄러운 경험을 끌어낸 것은 아니다. 해마다 명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게 되는 고민이 있다. 이쪽 집안 저 쪽 집안으로 챙겨야하는 봉투, 학교은사나 직장상사에게 마련해야할 선물들, 그것들을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마련해야하느냐는 것이다. 가난한 가계부 위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고민들을 명절을 명절이 아닌 고역으로 만든다. 심지어는 아이들 세뱃돈을 시세대로 챙겨야하는 것까지도 그 고역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명절이 명절일 수 있는 것은 선물이 선물일 수 있고 성의가 성의일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 해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고작 열흘 남짓 남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즐거운 마음보다는 가난한 가계부가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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